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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암보다 두려운'시청률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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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암보다 두려운'시청률 경쟁

입력
2006.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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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역량있는 한 여성 방송작가가 우리 곁을 떠났다. 가냘픈 몸으로 암세포와 싸우다 오십 짧은 생애를 접은 조소혜씨.

기자는 그와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가 쓴 작품은 또렷이 기억한다. 1996년부터 97년까지 주말이면 채널을 KBS에 고정시키게 했던 배용준 최수종 이승연 최지우 주연의 '첫사랑'. 드라마는 한 여자를 놓고 벌이는 형제의 사랑과 갈등, 그들 주변 인간들의 진솔하고도 소박한 삶을 그렸다.

조씨는 '첫사랑'을 통해 드라마 회당 최고 시청률 65.8%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주말 TV 시청자 10명 중 7명 가량은 '첫사랑'에 채널을 맞췄다는 얘기다. 이 수치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를 유명 방송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시청률 기록은 오히려 올가미가 되어 그의 삶을 옥죄었던 것같다. 그는 세상을 등지기 전 가까운 지인에게 "간암이라는 병명을 의사로부터 들을 때보다 더 긴장되고 괴로웠던 일은 MBC 일일극 '맨발의 청춘' 방송 때 아침마다 받는 시청률표"라고 말했다고 한다.

'맨발의 청춘'의 시청률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 드라마가 끝난게 지난해 말이고, 그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게 채 한달도 되지 않았다. 피말리는 창작 작업, 방송사간 시청률 경쟁, 그럼에도 오르지 않는 시청률이 그의 건강을 해쳤으리라 짐작키란 어렵지 않다. 도대체 시청률이 뭐길래.

요즘 방송계는 '시청률 지상주의' '시청률 만능주의'에 점령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시청률이라는 깊은 늪에 빠진 형국이다. 어떤 프로그램이 시장(시청자)에서 가장 잘 팔리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이다 보니 방송사의 입지나 광고수입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그런 까닭에 높은 시청률 달성은 방송사의 지상 과제가 됐다.

시청률 경쟁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시청자들은 정말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청률이 높아 인기가 좀 있다 싶으면 억지 연장 방송을 하기 일쑤고, 시청률이 낮으면 서둘러 막을 내린다. 비슷한 포맷의 경쟁 오락프로그램들은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려 한다. 시청자들의 입장은 도외시한 채 오직 공급자의 입장, 공급자간 경쟁 논리만 작용하는 일방적 방송 공급 행위만 횡행하고 있다.

바야흐로 월드컵 시즌이다. FIFA에 2,500만 달러(약 240억원)를 주고 중계권을 산 지상파 방송3사는 64게임 전 경기를, 그것도 각 사별로 방송한다. 저마다 유명 해설가를 동원한다지만 어차피 같은 콘텐츠다. 전 방송이 밤낮으로 월드컵을 중계하고, 모든 프로그램이 월드컵을 소재로 삼으면 축구 팬조차도 견디기 힘들다.

한국 대표팀과 보스니아의 평가전 직후 MBC 뉴스데스크가 무려 25분여 동안 16꼭지에 걸쳐 평가전 및 월드컵 소식을 전하는 모습은 월드컵 기간 중 시청자들이 겪어야 할 불행의 전조처럼 보인다. 방송사들의'암보다 두려운'시청률 경쟁은 유명 방송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을 넘어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황상진 문화부장 직대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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