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매스컴은 우승팀에 대한 예상기사를 앞 다투어 내 놓았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전 대회 우승 팀인 프랑스를 비롯해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 잉글랜드를 준결승까지 오를 4강으로 꼽았다. 매 대회 우승후보 0 순위인 브라질은 남미 예선에서 6번이나 패하는 수모를 당해 아예 리스트에서 제외됐다.
그런데 한 예언가는 반드시 브라질이 우승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매직넘버 3,964가 우승 방정식을 푸는 열쇠라고 주장했다. 월드컵에서 독일 팀이 우승을 차지한 1974년과 1990년을 더해보자. 다음에 아르헨티나 팀이 우승한 1978년과 1986년을 합쳐보라. 마지막으로 브라질 팀이 2002년 월드컵 대회 전 우승한 1970년과 1994년을 더해보라. 합은 모두 3,964이다.
그렇다면 2002년 월드컵 대회 우승 팀은 3,964에서 2,002를 뺀 해의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한 나라가 될 것이다. 3,964 - 2,002= 1962. 1962년 월드컵에서는 어느 팀이 우승을 했을까. 브라질이다. 예언처럼 결승전에서 브라질이 독일을 물리쳤다.
독일 월드컵에서는 어느 나라가 우승을 할까. 3,964에서 2,006을 빼면 된다. 그 값은 1,958 이다. 1958년 월드컵에서는 어느 팀이 우승했나. 또 브라질이다.
예언가는 계속해서 마의 숫자 3, 9, 6, 4를 더해 보라고 했다. 22가 된다. 축구장에서 경기를 펼치는 양 팀을 합친 숫자다. 22명이 경기를 하는 축구가 존재하는 한, 22라는 숫자와 반드시 관련이 있는 결과가 나온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 명이라도 퇴장 당한다면 결과는 달라진다는 말과 함께......
그렇다면 세상의 운명은 그의 예언과 같이 미리 결정돼 있는 것일까. 운명을 논하는 것은 신학이나 철학의 영역처럼 생각되지만, 실상은 물리학이 다루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문제다. 물리 시간에 배운 대포알의 운동에 대한 뉴턴의 운동방정식을 상기해보자. 이 이론에 따르면 초기 운동상태를 알고 있을 때 그 물체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뉴턴의 역학적 체계를 운명론적 체계라고 한다.
뉴턴 역학의 출현 이후 19세기 말까지 300여년간 모든 학문 영역에 이 운명론적 우주관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작은 입자의 세계에서부터 천체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원리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예술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정연한 질서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크게 실망할 논리가 담겨져 있다. 뉴턴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창조되어 운동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일어날 모든 일들이 결정돼 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어떠한 변화도 줄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다. 인간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가 포함돼 있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게 됐다.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양자역학이 그래서 발전했다. 언제나 변방이었던 나라가 4강의 신화를 이루는 축구의 드라마와 물리학의 연구에는 놀라운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 남균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