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뉴욕의 가난한 화가 마을이 무대다. 외상 값에 쫓기는 화가들이 미로 같은 변두리에서 안심하고 작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함으로써 이뤄진 화가촌이다.
이 거리에 폐렴이 돌면서 젊은 여성은 극적으로 회복되고, 늙은 화가는 벽에 마지막 담쟁이 잎을 그려놓고 죽는다. 감동과 슬픔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단편소설이다. 파리 시에도 화가촌이 있다. 2차 대전 때 독일과 싸우기 위해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저장하던 창고들이 이제는 화가들의 공동작업장이 되었다. 허름해서 임대료도 헐하고, 천장도 높아서 작업하는 데 편리하다.
▦ 집과 마을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양주시 장흥은 1980년대부터 서울 근교의 데이트 명소였다. 처음엔 골짜기를 따라 운치 있는 음식점과 카페, 야외조각공원 토탈미술관이 들어섰다.
뒤따라 수상한 모텔들도 세워지면서 이 지역은 한때 성황을 누렸다. 그러나 더 나은 음식점과 모텔들이 더 깊은 산쪽에 속속 자리를 잡자, 앞 유원지쪽은 파리를 날리게 됐다. 모텔들은 울상 짓고 토탈미술관은 휴관을 한 채 인수자를 찾아 나섰다. 새 일을 잘 벌이는 가나아트센터를 상대로 호소했다.
▦ 가나아트센터와 양주시가 공사를 벌인지 4개월만인 최근, 이 일대가 장흥 아트파크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6개층의 객실과 지하 카바레가 있던 모텔이 모두 화가ㆍ조각가의 작업공간으로 바뀌었다.
800평 규모의 아틀리에에서 가나 등 화랑들이 지원하는 작가 25명이 2년간 무료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작가들은 1년에 두번씩 작업실을 개방함으로써, 대중과 호흡하는 사실상의 전시회를 갖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를 본 주변 모텔들이 자기들도 리모델링해서 작업실로 써 달라고 앞 다퉈 요청하는 점이다.
▦ 이 아트파크는 작업용 건물과 야외조각공원, 전시장, 어린이 미술관, 원형 공연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개관기념 국내외 유명작가전이 개최되고 있고, 소프라노 김원정의 재즈동요 공연도 열렸다.
또 있다. 연말까지 작가 80명의 작업실과 1,000평 규모의 공동전시장이 추가로 건설된다. 더 기쁜 것은 양주시와 장흥면이다. 엄두도 못 낼 수준의 유명작가 마을이 세워졌고 한물 간 유흥 공간이 문화공간으로 바뀜에 따라, 지역 이미지도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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