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은 지금 붕 떠 있다." 지난 5일 미국에 첫발을 디딘 탈북자 6명의 현재 상태가 그렇다는 얘기다. 탈북자들의 첫 미국행을 성사시킨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는 그 이유를 "여기저기 구경 다니고 좋은 음식 먹고 미국의 높은 분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달이 다 돼가는 그들의 미국 행적을 되짚어 보면 그도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 미국행 6명 '붕 떠 있는 상태'
그들은 미국의 '북한 인권법'에 따라 난민 지위를 인정 받고 제3국을 경유해 미국에 입국한 첫 사례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처음이기 때문에 치러야 할 홍역 같은 통과의례가 그들을 맞았다.
동부 뉴저지주의 뉴왁 공항에 내린 이후 그들은 뉴저지 난민수용시설에 머물면서 전화 등을 통해 한국 및 외국 언론들의 개별적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그들은 "우리는 아무 것도 몰라요"라고 말하면서도 천 목사 등이 마련한 일정과 계획에 따라 성실하게 움직였다. 안전 등을 이유로 난민의 신분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원칙이었지만 그들의 동선은 거의 대부분 노출돼 있었다.
16일 천 목사와 함께 수도 워싱턴에 온 그들은 '높은 분'들을 만났다. 이들의 미국행 성사에 직ㆍ간접으로 역할을 했다는 샘 브라운백 공화당 상원의원을 비롯한 상ㆍ하원 의원, 미 국무부 당국자, 북한인권 전문가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백악관 면담도 추진됐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이런 일정들은 대부분 '탈북자 난민 미 입국'의 첫 사례가 갖는 선도적,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미국측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았다. 탈북자들을 만난 미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 인권문제, 탈북자들의 참혹상, 중국의 비인도적 처사 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관심은 미국 내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탈북자 특수'를 만들어 내려 한다는 느낌이 들게 할 정도였다.
탈북자들의 미국 여행은 23일 서부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침내 첫 공식 기자회견을 가짐으로써 일단락됐다. 탈북자 한나(가명)씨는 "회견할 때 마음이 아프지만 민족을 구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다"고 말했다. 이제 첫 사례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부여됐던 이 같은 임무는 대체로 마무리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제부턴 美서 살아남는 법 익혀야
지금부터는 '탈북자 특수'를 조성하려는 미측이든, 이른바 '기획 탈북'을 주도해온 우리측 일꾼들이든 내실을 기하는 과제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첫 사례는 큰 관심을 모았지만 미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들을 얼마나 많이 데려올 수 있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쉽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탈북자들의 미국행 지원을 위한 미 정부의 예산 확보도 기대만큼 원활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당장 '붕 떠 있는' 탈북자들은 '땅으로 내려와' 호흡을 가다듬고 미국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탈북자 특수가 거품이 되지 않게 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고태성 워싱턴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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