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서독 수상으로 취임한 빌리 브란트는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정열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서독은 폴란드와 2차 대전 이후 새로 그어진 지금의 국경선을 인정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의 골자는 과거 독일 영토의 4분의 1인 남한 정도 크기의 영토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독일 내 국수주의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그들은 영토와 함께 그 곳에 살고 있는 독일인들을 저버리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절규했다.
폴란드 영토로 굳어진 옛 독일 땅 슐레지엔 주의 고도 오펠른에 대대로 살던 클로제 가(家)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1978년 이 가족에게는 경사가 생겼다. 아주 잘 생긴 사내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어린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각종 운동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다른 어린이들 보다 점프력이 뛰어났다. 그의 부모도 폴란드의 국위를 떨친 체육인이었다. 아버지는 폴란드의 축구 팀에서 프로 선수로 뛰었고, 어머니는 막강한 폴란드 핸드볼 국가대표팀에 82회나 선발됐다.
그러나 그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 가족은 독일로 이주했다. 팔츠에 정착한 클로제 일가는 독일과 폴란드의 2중국적자가 됐다.
점프력이 주무기인 클로제는 붉은 악마라는 별명을 가진 분데스리가 카이저스라우테른 팀의 골게터가 되었다. 뛰어난 헤딩슛 능력에 반한 독일 국가대표 감독 루디 ?러는 그를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했다.
클로제 선수의 맹활약으로 독일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예상을 뒤엎고 결승까지 진출했다. 그가 넣은 다섯 골은 모두 그의 특기인 헤딩에 의한 슛이었다. 다섯 개의 헤딩 골은 월드컵 최초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클로제가 월드컵에서 두각을 나타난 뒤 폴란드도 그를 대표선수로 선발 하려 했다. 그가 폴란드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폴란드는 당연히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클로제는 자신이 현재 독일의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독일 선수라며 이 제의를 거부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중국적자인 것이 슬프다며 다시는 영토문제로 인해 자신과 같은 불행한 선수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계속됐다. 아이러니칼하게도 2006년 독일 월드컵 예선리그 A조에는 독일과 폴란드가 에콰도르, 코스타리카와 함께 들어가 있다. 14일 독일과 폴란드는 서로 질 수 없는 경기를 벌인다. 역사적 앙금과 민족 감정 때문에 벌써부터 열기가 뜨겁다. 이 경기에 분명히 기용될 클로제를 많은 팬들이 벌써부터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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