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대의 회계부정 사건으로 파산한 에너지 기업 엔론의 전 경영진에 대해 전면적인 유죄 평결이 내려졌다.
미 연방 배심원단은 25일 엔론의 케네스 레이(64) 전 회장에게 은행 사기 및 은행에 대한 허위 사업보고 등 6개 혐의 모두를 유죄 평결했다. 또 제프리 스킬링(52) 전 최고경영자(CEO)에 대해서는 28개 혐의 가운데 내부자 거래와 공모, 사기 등 19개 혐의의 유죄를 인정했다.
이로써 2001년 6억 달러에 이르는 당시 최대 규모의 회계부정이 드러나면서 부채 총액 131억 달러로 역시 최대 규모의 파산을 기록했던 엔론 사건은 4개월 동안 계속된 재판을 통해 기업 사기, 화이트 칼라 범죄에 대한 엄격한 단죄로 이어지게 됐다. 이들에 대한 선고는 9월11일에 이뤄질 예정이나 스킬링 전 CEO는 항소의사를 밝힌 상태다.
인정된 혐의에 비추어 레이 전 회장은 이론적으로 최장 45년, 스킬링 전 CEO의 경우는 최장 185년형의 실형이 선고될 수 있어 이들은 여생을 감옥에서 보낼 가능성이 높다.
이날 평결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이들은 소송비용으로 7,000만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회계조작과 규율파괴의 대명사가 된 엔론에서 사기를 주도한 장본인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주주를 속이면 감옥에 가고, 부자나 권력자도 법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이들을 기소한 법무부의 폴 맥널티 부장관은 “검사들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파산으로 일자리와 연금을 잃은 근로자, 저축을 날린 주식 투자자들을 위한 굉장한 승리”라고 자평했다.
엔론은 1985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회사의 합병을 통해 설립된 후 15년 만에 미국과 유럽 거래 에너지의 20%를 담당하는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으로 부상, 파산 직전 미국 내 7대 기업으로 세계 40개국에 2만1,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렸다. 엔론의 몰락은 차입에 의존한 무리한 신규사업의 실패가 주요인으로 꼽히는데 회사 임직원과 회계법인, 은행 관계자들이 회계부정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겨줬다.
엔론의 파산은 1930년대 증권관계법 제정 이후 회계부정 방지를 위한 최대 개혁으로 평가되는 사베인-옥슬리법 제정 등 제도개혁의 시발점이 됐다. 레이 전 회장이 조지 W 부시 대통령 가문에 막대한 정치자금을 제공해왔다는 점에서 엔론 사건을 정경유착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백악관은 이를 의식, 평결이 나온 후 “그간 기업부정에는 용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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