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문학에서 풍자(諷刺)시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 김지하의 ‘오적(五賊)’이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으로 이름 붙여진 다섯 짐승들의 도적행각을 통해 경제개발 초기 한국사회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도덕적 타락상을 통렬하게 비튼 작품이다.
1970년 ‘사상계’ 5월호와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 6월 1일자에 게재된 이 시로 인해 시인은 구속되고 ‘사상계’는 정간 조치됐다. 김지하가 이후 김수영 추모시론 ‘풍자냐 자살이냐’에 썼듯 그에게 풍자는 숨막히는 현실의 억압을 극복하기 위한, 자살만큼이나 절박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오적’은 저항의 시대적 의미와 함께 문학적 측면에서도 그 도저한 성취를 평가 받는다. 담시(譚詩)라는 독특한 양식의 서사구조를 통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소실되다시피 한 민중의 가락을 절묘하게 되살려냈다.
무엇보다 판소리 사설조로 거침없이 풀어내는 운율을 타고 읽어가다 보면 도처에서 배꼽을 쥐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해학이 지금 다시 읽어도 압권이다. 당시 민중은 이를 몰래 돌려 읽으며 속이 확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고, 당대 권력자들은 해학 속의 날 선 비수에 놀라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이런 것이 풍자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을 놓고 이번엔 풍자시가 논란이다. 시정의 쌍욕과 육두문자들만 휘갈겨 놓은 이 시(제목도 옮기기 민망한)에서 느껴지는 것은 비틂의 유쾌함이 아니라 극단의 증오와 변태적 쾌감이다. 이걸 되도 않게 풍자시로 지칭한 건 끔찍한 표현에 지레 겁먹은 이들의 오버다.
작자 송모씨 자신은 현실과 일치시킨 리얼리즘 시라고 했다니 그런 식이라면 포르노나 화장실낙서야말로 리얼리즘예술의 극치다. 번듯한 학력과 시적 이력까지 갖춘 이가 이런 시를 세상에 띄워놓고 격한 반응에 짐짓 놀라워 하는 것은 위선이다.
▦루신(魯迅)은 오경재(吳敬梓)의 ‘유림외사(儒林外史)’를 중국의 첫 본격 풍자소설로 평가하면서 나름의 풍자문학론을 제시했다. 주제에서 사적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되, 표현에선 개탄 속의 해학과 완곡함 속의 풍자 등 예술적 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잣대로도 송씨의 글은 족히 논할 바가 못 된다. 김지하는 ‘오적’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다.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f다’ 송씨도 하고픈 말을 원 없이 뱉었으니 좀스럽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참으로 치졸하고 무책임하게 썼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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