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영국의 한 시골마을에 들어선 것 같기도 하고, 미국 LA의 유명한 영화테마파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온 것 같기도 하다. 영국식 펍(Pub), 레스토랑이 양쪽에 즐비한 언덕길을 내려가면 시청, 경찰서, 우체국, 병원, 공연장 등이 나타나고 그 곳마다 외국인 경찰관, 우체국 직원, 의료진이 실제 상황처럼 손님을 맞는다.
● 정치적
어줍은 표정으로 다가와 떠듬떠듬 영어를 하는 방문객들에게 외국인 교사들은 친절히 응대하며 틀린 발음이나 표현을 바로잡아 주기도 한다. 빨간 전차가 지나가는 거리 곳곳에서는 외국인 에듀테이너(Edutainer)들이 신나는 춤을 추거나 불을 뿜는 마술을 선보이며 방문객들의 박수갈채를 받는다.
테마파크를 찾는 즐거움과 살아 있는 영어교육의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곳, 개인적으로 우연히 갔다가 푹 빠져버린 경기영어마을 파주캠프의 매력이었다. 4월 3일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10만명 이상이 다녀간 높은 인기의 비결도 여기에 있다.
경기도가 850억원을 들여 8,400평 면적에 조성한 파주 영어마을의 진정한 가치는 눈요기거리 놀이공간이나 시설에 있지 않다. 그 정도 예산을 쓴다면 외형적 시설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교육 프로그램이 외국의 전문어학원에 못지 않게 체계적이고, 그 수준 높은 영어 교육의 혜택을 받는 대상이 사교육은 꿈도 못 꾸는 경기도 주민, 저소득층 학생이라는 점이다.
파주 영어마을에서는 누구나 갈 수 있는 당일 일일체험 외에 도내 중학교 2학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5박6일반, 주말 1박2일의 초등학생반, 2주 방학집중반, 교사연수프로그램등이 있다.
이 가운데 학교별로 500명이 단체로 입소하는 5박6일 프로그램의 경우 원어민 교사와 숙식을 함께 하면서 음악, 드라마, 연예, 과학 등 흥미로운 과목을 스스로 선택해 교육을 받는다. 교육시간으로 비교하면 한 달짜리 외국 영어캠프를 다녀오는 효과에 못지 않다. 그러나 비용은 불과 8만원이고, 교육인원의 20%는 저소득층 자녀에게 무료로 배정된다.
영어마을 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100명의 원어민 교사들은 철저한 확인을 거쳐 선발된 영어교육 자격증 소지자들이다. 무자격자들이 버젓이 영어강사를 하는 일부 사설학원보다는 훨씬 낫다는 이야기다. 벌써 파주 지역 학부모 가운데는 매일 방과후 초등학생 자녀를 데려와 27가지 일일체험 프로그램(4,000원~1만6,000원)을 돌아가면서 참석시키는 극성파도 생겨났다고 한다.
파주 영어마을을 이렇게 장황하게 소개하는 까닭은 사교육에 압도당하고 있는 공교육이 추구해야 할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한 해 미국과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에 유학과 연수비로 빠져 나가는 돈은 7조원이 넘는다. 만약 국내에 투자됐다면 국내총생산(GDP)을 1% 정도는 더 불어나게 할 수 있는 금액이다. 영어교육 등을 위해 가족과 생이별하고 어렵게 생활하는 기러기아빠도 1만~2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렇지만 이들의 고통도 어려운 생활형편으로 사교육은 생각도 못하는 저소득층에게는 배부른 소리요, 부러운 비명이다. 영어마을은 이러한 영어교육의 질곡에 숨통을 트는 대안이 되고 있다. 최근 파주 영어마을을 집중 보도한 독일 국영방송 ZDF는 “무너져 가는 독일 공교육의 모델이자 해외유학을 보낼 수 없는 저소득 가정의 교육 대안”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 당면한
물론 파주 영어마을에 대한 평가는 아직 성급하다. 그 동안 운영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적지 않다. 경기도의 성과에 자극받은 지자체들이 충분한 준비와 노하우 없이 너도나도 영어마을을 짓는 과열 분위기도 우려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성과만으로도 “이제 그런 건 그만 만들어야 한다”고 비난하고 나섰던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부끄러움을 느낄 만 하다.
뜨거운 교육열은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지목하는 한국의 힘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고쳐야 할 한국병으로 통한다. 중병으로 신음하는 공교육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경기영어마을처럼 창의적인 대안들이 샘물처럼 솟아나야 한다. 그 출발은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의 눈으로, 마음으로 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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