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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임근준 '피카소전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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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임근준 '피카소전을 보고'

입력
2006.05.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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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인생에서 모두가 주목하는 것은 1907년부터 1919년까지다. 그 십여 년의 시간동안 다중시점을 캔버스에 구현하는 전형적인 입체파 회화가 등장, 치열한 실험을 통해 하나의 시대적 스타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1907년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제작하며 아프리카풍의 그림을 그렸고, 1909년 분석적인 입체파 화풍을 선보인 뒤, 1912년 종이 따위를 캔버스에 붙여 콜라주 작품을 제작하며 종합적 입체파의 시기로 접어들면서 현대미술사의 한 봉우리를 이뤘다. 그렇다면 이 스페인 남자는 ‘천재’라서 1910년대의 역사적 성과 이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만도 않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가 급변할 때, 피카소는 다다이즘과 같은 급진적인 미술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1920년대에 그는 소위 ‘고전주의시대’를 맞아 보수적인 화풍으로 물러났고, 이후 양차대전 사이에 일어난 새로운 당대 예술의 흐름에 부적응하며 초현실주의자들과 경쟁했다.

입체파를 미술운동이나 사조로 발전시키는 데 실패한 피카소는 자신의 입지를 지키는 방편으로 정치를 택했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그에 대한 정치적 발언으로서의 작품을 제작해 국제적인 논란과 싸움을 일으킨 것이다. 교과서에서 무조건 명작이라고 가르치는 ‘게르니카’(1937)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39년 2월 23일자 ‘타임’지 표지인물로까지 등장한 피카소는 살아서 최고의 명예와 부를 누린 최초의 예술가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러나 살아서 미술사적 지위를 확보했다는 이야기는, 그가 살아서 ‘유효성을 상실한 예술가’ 취급을 감수해야 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병적인 여성편력을 보이며 자신의 왕성한 생명력을 입증하고자 애썼다. 너무 빨리 너무 큰 성취에 도달한 이후, 피카소는 평생동안 급변하는 시대와 부조화하며 살아야했다. 부와 명성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따라서 ‘인간’에 초점을 맞췄다는 ‘위대한 세기: 피카소’전(서울시립미술관 2006.5.20~9.3)은, 보기에 따라, 다소 쓸쓸하고 애처로워 보이기도 한다.

초기에서 말기에 이르는 시기별 주요 작품을 골고루 볼 수 있도록 피카소의 전 시기를 망라한 전시기획팀의 작품 섭외는, 작가의 화력이 오르고 내리는 과정을 가감 없이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형 유화 작업들 보다는 소품들이 도리어 볼만 하다. 콜라주 작품을 만날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입체파 시기의 소품 ‘비둘기’(1910)나, 고전주의 시대의 습작 ‘우물가의 세 여인’(1921), 연인 마리 테레즈 발테르를 그린 ‘거울 앞의 잠자는 여인’(1932), ‘게르니카’를 위한 사전 연구작으로 그린 ‘우는 여인’(1937) 등을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태피스트리 작업 ‘무용’(1967)과 초고속으로 제작한 도자기 작품도 귀엽다.

하지만, 역시 가장 작품다운 것은 청색시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솔레르 씨 가족’(1903)이다. 노년기의 태작과 비교해보면, 이 작품은 젊은이의 우울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화면 저 너머가 곧 터져오를 어떤 에너지로 가득한 것 같아, 보는 이의 가슴은 설렌다. 그림이나 사람이나 모든 것이 결정되기 이전, 가능성으로 가득한 청춘이 가장 아름다운 것일까? 그러고 보면, 전쟁은 기존의 문화를 파괴하고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키는 최고이자 최악의 방편이고, 사랑과 연애는 스러질 수밖에 없는 생명의 유일한 위안인가 보다. 적어도 피카소에게는 그랬던 것 같다.

미술평론가ㆍ‘아트인컬처’ 편집장 임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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