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파스’는 우리 도서관에서 가장 어린 아이들(유아)의 엄마 모임이다.
줄줄이, 꼬맹이들을 데리고 있는 엄마가 몸 편히 마음껏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뭘 해보고 싶어도 애들 때문에…” 직장도 공부도 꿈도 포기하고 주저앉았다고 했다. 모임도 정신 없다. 어린이책 이론서를 놓고 공부한다고 발제자를 정하고, 복사물을 준비해 와도 제대로 한 줄 읽지 못한다. 여기서 ‘으앙’ 저기서 ‘으앙’….
‘크레파스’ 모임이 있는 금요일, 꼬맹이들이 휩쓸고 있는 도서관은 이미 도서관이 아니다. 책은 벽돌이 되어 쌓이고 꼬마들 의자는 기차가 된다. 도서관을 꾸민 예쁜 소품 인형들은 모두 바닥으로 내려졌다. 아이들이 먹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며 우유 따위가 곳곳에 얼룩을 만든다. 아이들은 서가 구석, 도서 반납대 아래, 책상 위까지 점령한다. 그렇게 아이들이 휩쓸고 가면 도서관은 그야말로 태풍 뒤의 잔해만 남는다.
어느 날 모임 엄마들은 “아무래도 안되겠다”며 푸념을 쏟았다. 너무 산만해서 토론 따위는 진행할 수가 없다고. 보는 내 마음도 심란했는데…, 나는 크레파스 엄마들에게 영상그림책을 만들어 보자고 권했다. 엄마들은 반신반의했다. 이 엉망진창 분위기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가능할까요?”….
그 엄마들이 해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책들 중에서 특별한 두 권을 고르고, 내용을 각색한다. 시나리오 작가처럼. 서로 배역을 나누어 연극을 한다. 어려운 할아버지 목소리까지 소화하고 나면 마치 연극배우인 양 당당해진다. 드디어 날을 정해 스튜디오로 향한다. 헤드폰을 쓰고, 녹음실에 들어가, 성우가 된다. 파워포인트 작업으로 동영상을 만들고, 배경음악을 넣어 가면서 드디어 애니메이션 감독이 된다.
도서관과 이웃이 어울려 함께 하는 문화행사 ‘나랑 같이 놀자’에서 드디어 엄마들이 만든 영상그림책이 상영되고 ‘크레파스’ 엄마들의 이름이 박힌 자막이 올랐다. 그네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름과 함께 한 컷 한 컷 바뀌는 화면 속에는 난장판 같은, 모임 날 모습들이 그대로 들어 있다. 그 산만하고 버거운 시간 속에서 해냈다. 모두의 콧등이 시큰해졌다. 손 큰 할머니 만두 만들기, 호랑이를 잡은 피리, 여우누이, 똥떡, 돼라돼라 뽕뽕, 훨훨간다, 악어오리 구지구지…. ‘크레파스’ 엄마들이 만든 작품이 벌써 7편이다.
아이들이 좀더 자라 엄마 몸이 놓이면 프로 영상그림책 제작꾼이 되라고, 나는 자꾸 바람을 넣고 있다. 엄마에게도 꿈이 필요하다.
주저앉은 엄마들에게 아이를 통해 만난 그림책이 새 날개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어린이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관장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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