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의 밑자리는 기억이 아닐지. 기억을 다독여 추억으로 품는 것이 시가 아닐지. 감정이 스미기 전의 포슬한 기억의 가루들을 반죽해서, 슬픔도 아픔도 고단함도 눅여 아득히 밀어보고 슬며시 당겨도 보는 추억. 그래서, 끝내는 애를 끊던 흐느낌의 기억마저 다독여 애틋한 그리움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지.
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으나 지난해 12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스물여섯 해 짧은 생을 마친, 시인 신기섭의 시집 ‘분홍색 흐느낌’(문학동네)이 나왔다. 떠날 것을 예감이라도 한 듯, 지난 겨울, 미리 준비한 자서(自序)에 그는 “추억이 되지 못한 기억들을… 이곳에다 묶는다”고, “이 시집을 언제나 곁에 계신 할머니에게 바친다. 미친 듯이 기뻐 보이는, 눈이 내리고 있다”고 썼다. 그러고는 그 눈을 따라, 그 보다 한 발 먼저 떠난 할머니를 따라 하늘로 갔다.
그의 시들은 “엄마를 죽이고 세상에 나온 신생아”가 “나에게 눈알을 달아준” 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세월의 상처들, 그 할머니마저 보내고 홀로 남은 뒤의 흐느낌으로 슬프다. 또 그 슬픔을 삭여 추억으로 안으려는 안간힘으로 고통스럽다. 시마다 촘촘히 새겨진 ‘죽음’의 서정들은 그 슬픔과 고통을 이겨보려는 극한의 단련이었을까.
시인에게 할머니는 사실상 유일한 혈육이었다. 할머니의 노동으로 시인이 컸고, 그의 노동으로 당신을 부양했다.(‘안개’는 그와 할머니의 일상의 고단함과 슬픔이 절제된 시어로 빚어진 절창이다.) 그에게 모든 ‘엄마’는 ‘짧은 비명’일 뿐, “엄마라고 부르는 것들은 모두 할머니”였다. ‘이제 혼자 살라’며 떠나버린 할머니의 빈 자리에 앉아 시인은 이렇게 혼잣말한다. “할머니, 나 혼자도 살 수 있어요./ 살 수 있는데, 저 문틈 사이로 숭숭 들어오는// 눈치 없는// 눈발// 몇// 몇,”(‘뒤늦은 대꾸’)
혼자 살 수 있다고 한 것도, 추억의 힘이다. ‘추억’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산소호흡기 거두고 헐떡이던 할머니를 닮은 꽃의 향기를 맡는다. “추억이란 이런 것./ 내 몸속을 떠도는 향기, 피가 돌고/ 뼈와 살이 붙는 향기,/ 할머니의 몸이 내 몸속에서 천천히 숨쉰다.”
명당자리 포기해서 집안이 기울고 병든 자식을 낳더라도 “물과 무덤이 만나는 사랑을 생각”(‘무덤’)하는 이 질긴 집착은 그가 견딘 외로움의 그늘이다. 또 “눈물 흘릴 구멍하나 없”이 상처에 상처를 얹으며 살다가 그 “상처들이 서로 엮이고 잇닿아/ 견고한 하나의 무늬를 이룩”하면 버려지는 (‘나무도마’) 그 쓸쓸함이다.
고통과 고독으로 씻기고 단련된 시선이 바깥으로 향할 때 세상은 연민과 애정으로 투명하다. 이웃 건물 창문 너머에서 자위하는 중년 남자의 모습에서 “접힌 가슴살 옆구리살들 제 몸을 때리며 날아가려는 새의 날개”(‘고독’)짓 같은 슬픔을 본다. 공장에서 코를 다친 친구의 상처 자국에서 꽃도 보고 새도 보고, “피숨을/ 내쉬었다 들이마실 때마다 이승을 저승이게끔/ 느끼게 하는 노을”을 본다.(‘극락조화’) 시인은 그래서, 삶의 무거움은 “상투적이지만(…) 상투적이라 말하지 않기로 한다”(‘이발소 가는 길’)고 했다.
어느 날 대학 은사인 김혜순 시인이 제자들에게 야단 칠 일이 있었던가 보다. 과대표인 그를 불러 호통을 치는데, 그는 벙싯벙싯 웃고만 섰더란다. 화를 돋구는 어린 제자에게 스승은 목청을 더 높이고, 제자는 계속 그렇게 웃고…. 일화를 들려주며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한테 야단맞는 것 같아 그렇게 좋더래. 그 녀석, 그게 그렇게 부러웠던 거야.”
지난 22일, 시인 없이 치러진 출판기념회는 그의 친구와 선후배들로 유래 없이 흥성했다고 한다. 그도 그 자리 어느 구석에 앉아 저렇게 환히 웃고 있었을 것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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