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은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린 못난 자식이 됐지만 사랑과 기대가 숨어있을 거라 믿습니다. 국민여러분 도와주십시오”
“제1야당 당수가 테러로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정부여당은 치안을 방치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전자는 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25일 비상회의에서 한 처절한 읍소였고, 후자는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가 24일 대전 유세에서 던진 분노의 한마디였다. 비장함이 가득 담긴 이들 연설은 옳고 그름을 떠나 듣는 이의 감정을 격동시킨다.
여야 지도부만 그런 것은 아니다. 후보나 지원 연사들도 감성 연설에 주력한다. 정책이나 공약은 간 곳 없다. 참 희한한 선거가 된 것이다.
불과 한달 전만해도 이러지는 않았다. 여야는 지방권력 심판론과 정권 심판론으로 치열한 논전을 벌였다. 서울시장 선거전에도 시 청사 이전 문제 등을 놓고 논리 대결이 벌어졌다.
그러다 우리당이 ‘감성카드’를 꺼내 들었다. 세 불리를 느꼈기 때문이다. 잘못했다는 반성으로 시작, 이제 “야당의 싹쓸이를 막아주십시오”라는 애원까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선거 현장은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이 넘실거리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유세장에서 “박 대표님, 고맙습니다”라는 구호를 외쳐 구설수에 오르기까지 했다.
4년 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청계천 복원문제가, 2년 전 대선에서는 수도이전 공약이 쟁점이었다. 그러나 5ㆍ31 지방선거에서는 아무리 돌아봐도 정책도 없고 쟁점도 없다. 오직 “살려달라”는 여당의 눈물섞인 아우성과 “피습을 당한 박 대표를 봐서라도…”라는 야당의 느긋한 동정론만 난무하고 있다. 참 씁쓸한 선거다.
염영남 정치부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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