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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과시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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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과시소비

입력
2006.05.2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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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반드시 필요한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쓸 데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실제로는 쓸 데 없는 물건에 쓸 데 없는 돈이 쓰이는 것이 소비다.

학교에서 배우기로는 불필요한 지출은 낭비라고 했지만 곰곰이 따지면 소비 중 상당 부분은 낭비다. 그러나 낭비적 소비도 다 이유가 있다. 상류 계급이 다른 신분과 자신을 구별 짓기 위해 전략적으로 소비한다면 이를 과시소비라고 한다. 명성을 얻으려면 낭비를 해야 한다고 베블렌은 말했다.

■소위 명품이 통하고 특별한 시장을 이룰 수 있는 근저를 생각해 본 한 연구에 따르면 명품의 선호는 결국 물질주의에 대한 집착의 정도와 비례한다고 한다. 상류 계급의 과시 소비는 이를 따르려는 중간 계급의 모방 소비 행태를 이끌고, 이런 소비는 다분히 사회적 의미를 띠는 행위가 된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문화자본의 형성 과정이다. 소비는 효용의 만족만을 넘어 의미와 상징을 갖고 있고, 이를 통해 그 계층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소비는 계급에 따라 차별적으로 발생하고 차별화된 소비양식은 다시 타자와의 구분을 통해 계급형성에 기여한다.”(김왕배, 연세대) 소비는 대량성을 통해 대중의 동질화를 촉진하지만 그 물질적 상징적 차이성을 통해 계급의 영역화를 촉진한다는 주장이다. 소비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수단이며 구별 짓기를 위한 투쟁의 장소라는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1980년 대 후반에 이르러 이른바 ‘소비 자본주의’ 시대로 돌입했다고 한다. 30여 년 간의 압축성장, 폭발적 물량 증대, 내수 시장의 급격한 팽창 등에 따른 결과라고 한다. 도시 중산층이 계속 늘고 실질임금이 꾸준히 상승해 구매력을 키웠다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깊어지기 시작한 것도 그 때라는 게 그의 관점이다. 1970년대만 해도 광범위한 사회적 의미를 가질 만큼 불평등이 심하진 않았다. 90년대 들면서 소비는 더 한층 고급화했다. 엥겔계수를 나타내는 식료품비는 확 줄어들고 교통 의료 외식 오락비, 그리고 해외여행의 증가가 두드러졌다는 통계가 예시된다.

요즘 말하는 양극화가 이런 뿌리를 갖고 있음을 새길 만하다. 청와대가 말하는 ‘버블 세븐’ 집값도 이런 범주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 잡겠다는 게 정책의지이지만 ‘명품 집값’들을 청와대가 공인한 것 같기도 하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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