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변론술은 정치적 성공에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란 작품에 등장하는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의 연설은 대중을 설득하는 언변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시저의 살해에 가담했던 브루투스는 이성적 논변에 호소하여 자신을 정당화하고자 했고 안토니우스는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연설로써 브루투스의 행위가 범죄였음을 주장하였다.
대중은 안토니우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자는 산문 형식으로, 후자는 운문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치 지망생들에게 논쟁에서 이기는 변론술을 가르쳤던 사람들은 소피스트라고 불렸던 철학자들이었다.
요즈음 대학 입학을 위한 논술 시험이나 각종 국가고시에 도입된 공직적성평가(PSAT) 덕분에 철학과 졸업생들의 인기가 제법 높다. 유명 논술 학원의 유명 강사가 되면 연봉도 상당히 높으니, 철학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드문 시대가 된 듯도 하다. 과연 논술은 이렇게 요령을 습득하면 되는 글쓰기의 기술인가?
글의 형식은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내용과 분리하여 글쓰기 기술이나 방법만을 가르치는 일은 그래서 공허할 수 있다. 언젠가 고등학교에서 논술을 교과목으로 설치하는 문제를 교육부 장관이 언급했던 일이 있었다. 현재 많은 대학에서 논술 또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독립 교양 교과목으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엄격히 본다면 글쓰기만을 하나의 교과목으로 설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글쓰기는 독립 교과를 통해 배우는 기술이나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은 왜 쓰는가?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글을 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달의 기술보다는 생각과 느낌의 내용이다. 논술 교육에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 것인가에 관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생각과 감수성이 있어야 하고 생각의 줄기를 만들어내는 논리력이 있어야 한다. 좋은 글을 많이 읽어 생각할 거리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자신의 문제의식으로 엮어낼 수 있어야 한다.
논술은 독립 교과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모든 교과목 안에 스며들어가야 한다. 인문, 사회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이나 공학에서도 글쓰기는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실상 소통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글을 통해 타인과의 소통 능력을 키우는 일은 어느 영역에서나 중요하다. 특히 과학과 같은 전문 영역에서 소통 능력은 자신들끼리의 작업에서도 중요하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확보하는 데서도 중요하다.
● 논술, 모든 교과목에 스며들어야
대중적 지지와 동의를 얻지 못하면 연구 인력의 지속적인 공급도 힘들고 과학기술의 발달도 제대로 이루어내기 힘들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글 잘 쓰는 학생들을 선택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글쓰기는 생각하기의 일환이고, 생각하기의 힘은 논리의 힘이며, 이 힘은 인간 발달과 대학 수학 능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논술을 잘하기 위해서 논술 학원이나 독립 교과 안에서 천편일률적인 글쓰기 훈련을 받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터득하게 해야 한다. 글은 남의 것을 쓸 수 있겠지만 생각은 남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혜숙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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