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큰 충격을 받고 나면 사람의 신경계는 극도의 긴장상태로 들어갑니다. 다시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 여차하면 반응할 수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연스러운 반응에 이상이 생기거나 도가 지나치면 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위협이 없는 상황, 다 지나간 상황에서도 이러한 긴장상태가 가라앉지 않고 지속되는데 이 때 위험을 피하기 위한 정상적인 긴장상태가 아니라 스스로를 괴롭히는 병적인 노이로제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고 불리는 마음의 병입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세 가지 특징적인 증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사고의 재경험입니다. 참전 후 이 병을 앓고 있는 분들이 전장에서와 유사한 총소리와 소음을 경험하면서 공포에 빠지는 경우입니다. 자꾸만 사고장면이 때로는 생생하게, 때로는 예전에 꿨던 꿈처럼 떠오르고 실제 꿈속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 같은 사고장면이 아니더라도 다치는 꿈을 꾸거나 악몽을 꾸게 됩니다. 반복되는 사고의 재경험은 불안과 공포를 불러옵니다.
두 번째는 회피 반응입니다. 교통사고를 당했던 사람이 다시 차를 타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고와 유사한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되는 것을 극단적으로 회피하고자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고와 관련된 생각이나 말, 사고를 생각나게 하는 환경적인 단서들로부터도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합니다. 그 결과 아예 외부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놓은 채 외면하고 사는 것처럼 심한 정서적 위축상태에 빠지게 되고, 멍하고 무감동한 사람처럼 되기도 합니다. 간혹 아예 사고의 일부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과도한 각성 상태입니다. 전화벨만 울려도 심하게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진정이 안 되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신경이 너무 곤두서 있으며, 외부 자극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되는 것입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고,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때로는 유별나게 신경질적이 되기도 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의 증상은 사고 후 보통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단 한번의 사고로 인한 고통스러운 증상이 보통은 수개월 이상 지속되며, 회복에 수년이 걸리기도 하고 평생 동안 고통 받기도 합니다. 따라서 적극적인 예방과 치료가 절실한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사고를 당한 경우에도 어떤 사람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걸리고, 어떤 사람은 가벼운 정서적 후유증만 경험하고 넘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전쟁터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멀쩡하지만, 어떤 사람은 급정거한 차 안에서 넘어지기만 해도 평생을 정서적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경험과 심성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고,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양상과 대처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평소에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도록 스스로를 훈련시키는 것은 정신적 외상 후 후유증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사고로 인해 충격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즉각적으로 도와주고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증상 예방법입니다. 이것은 가능한 사고 후 빨리 이루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이 때문에 큰 사고가 생기면 국가에서 조직적으로 현장에 상담원을 배치하거나, 상담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로서 현장에 가서 죽을 고비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과 상담을 나누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생명을 위협 받을 정도의 사고나 정서적 외상을 경험한 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판단될 때는 주저하지 말고 정신과를 찾아야 합니다. 효과적인 치료법들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상담치료를 통해 외상적 경험을 재구성 하는 것이 중요하며, 약물 치료를 통해 앞서 말한 다양한 증상들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 최면치료를 적용하기도 하며 집단치료를 통해 상담을 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 EMDR (eye movement desensitization reprocessing)이라고 해서 비침습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기법이 도입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것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여 시행하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가 늘고 있습니다.
성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윤세창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