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의 명칭이 알파벳 T자의 모양새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T셔츠’는 티셔츠이긴 한데 Y자나 H자 형태로 원피스처럼 길어졌다. 그 아래는 미니스커트, 반바지를 입은 반전된 길이의 ‘요롱이(허리가 길어 보이는) 패션’이다. 게다가 스타킹같이 몸에 쫙 달라붙는 스키니진이나 쫄바지를 덧입어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가늘어진다. 언뜻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놀이가 떠오른다. 허리선이 대체 어디야?
그래, 트렌드를 뒤져보면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올해 봄ㆍ여름 유명패션디자이너들 컬렉션 화보집을 뒤적여 본다. 사자처럼 부풀어 오른 금발머리와 잘록한 허리, 긴 치마, 금빛 액세서리, 달라스 패션? 아닌데…. 봉긋한 치맛자락과 레이스 블라우스 차림의 끝나지 않을 듯한 로맨틱패션, 사랑스러운 소녀패션이 대부분. 외관은 X자 실루엣. 허리를 졸라매 개미허리 대결이라도 나선 듯하다.
‘롱 웨이스트(long waist) 패션’에 대해 패션 전문지들은 1980년대 디스코풍 패션이란 설을 제공한다. 21세기 들어 유행경향에서 떨어지지 않는 ‘복고’ 딱지가 이번에는 근접한 과거를 들춰낸 것. 이러다간 매일 옷가지를 내다 버리고도 쌓여 있는 옷더미 속에서 엊그제 입었던 옷을 찾아내면서 ‘복고풍이다!’를 외칠 지경이다.
여하튼 80년대라, 팝(POP)을 팝콘 튀기듯 전 세계에 뿌려댄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의 시대를 기억 못할 리 없다. 필자는 ‘돈나 언니’의 ‘라이크 어 버진~’을 나름 ‘꺽기 창법’으로 읊조리고 ‘마이클 오빠’의 뒷걸음질로 교실바닥에 왁스를 바르던 1980년대 어린이였다. 마돈나의 브래지어와 타이즈 차림을 따라하기에는 어렸지만, 마이클잭슨의 외손 장갑, 흰 양말을 신은 발목이 보이는 짧은 디스코바지 고쳐 입기라면 자신 있었다. 하지만 ‘요롱이 패션’은 다리가 가늘어 보이는 디스코패션과 닮은 듯하지만 디스코 패션은 어깨가 각지고 허리선도 분명하다.
또 다른 진단은 ‘펑크 패션’. 다소 깜찍해지기는 했지만 위협적인 해골 모티프가 유행하고, 낙서한 듯한 프린트와 금속장식, 제멋대로 겹쳐 입은 ‘고딕룩’의 영향이란다. 영국의 정통 펑크 패션보다는 일본의 거리패션 ‘니폰풍’의 가능성이 엿보이지만 연약하고 헐겁기(loose) 때문에 이 역시 아닐 듯. 통과!
이쯤에서 ‘요롱이 패션’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에 들어간다. 복고풍은 인간사회의 역사뿐 아니라 개인의 과거사도 돌이켰다. 스스로의 순수했던 낭만적인 시대, 소녀들이 거리를 휩쓸었다. 허리선이 높은 하이웨스트 블라우스가 유행했고, 이 블라우스가 길어지면서 단품으로써 상의 역할을 하게 된 원피스로 변모했다.
여기에 여성스럽고 얌전한 복고풍에 지루함을 느낀 패션이 펑크룩과 디스코풍 패션과 접목했다. 암울하고 반항적이었던 펑크적 요소는 유머러스하게, ‘날티’나는 디스코적 요소는 한 톤 낮춰 재해석에 들어간 것.
의아스럽게도 요즘 거리패션의 요소들에서 보여지는 외관은 돌아오는 가을ㆍ겨울 예상 유행트렌드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2006/07년 가을ㆍ겨울 컬렉션에서 이전까지 깜직한 소녀들을 앞세웠던 ‘미우미우’가 반항적인 ‘레벨러스 걸(rebelious girl)’로 변신했고, 잘 자란 상류층 소녀들을 예쁘게 가꿨던 ‘마크 제이콥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마크 제이콥스는 오버사이즈 상의와 니트 레깅스, 특히 두꺼운 소재로 큰 상체를 강조했는데 동일한 스타일로는 ‘스텔라 매카트니’가 있었다. 커다란 깃이 달린 무릎길이의 오버사이즈 카디건과 점퍼, 코트를 선보이며 상의는 헐렁하고 크게, 하의는 타이즈 차림으로 슬림하게 표현해 최근의 ‘롱웨이스트 패션’의 지향 점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오는 가을ㆍ겨울 상의는 ‘빅사이즈’로 크게, 하의는 레깅스나 타이즈 차림으로 ‘타이트’하고 ‘슬림’하게 꾸몄다. ‘롱 웨이스트 패션’에서 발견된 허리선의 변화는 부드럽고 여린 이미지를 고수하던 여성을 슈퍼우먼으로 변신시키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패션을 창조하는 디자이너들의 생각보다 여성들은 빠르게 유행을 접수하고 있다. ‘패션계의 얼리 어답터’ 쯤으로 해석해야 하나? 창조적인 부활, ‘리바이벌(revival)’하며 미래를 지향하는 패션, 그 주체인 여성들은 더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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