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꼭 1주일 앞둔 25일 오후 종로구청장에 출마한 모 후보 유세차량이 트로트 가요로 표심을 유혹하는 서울 종묘공원. 하지만 ‘노인 공원’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유세차량에 그다지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20여명이 모인 정자 밑에서는 정치토론이 한창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70대 노인이 “야당 대표면 정부가 대통령 버금가는 대우를 해야지, 선거테러를 당하게 내버려 두는 게 말이 돼. 그러니 강금실 표가 자꾸 떨어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누군가가 우리당 책임론까지 거론하자, 다른 노인이 “우리당이 바보라서 표 깎아 먹을 일을 사서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리곤 “아무리 그렇더라도 야당이 싹쓸이를 하게 되면 민주주의가 되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이번엔 “그러게 정부나 여당이 치세를 잘 했어야지”라는 반박이 나왔다.
중ㆍ노년층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은 인물이나 공약경쟁을 쓸어버린 듯 했다. 용산의 한 부동산에서 만난 이정석(75ㆍ건축업)씨는 “박 대표 피습 사건 이후 인물이 낫다고 생각한 강금실 후보를 찍겠다는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곳에 있던 엄순성(68)씨는 “여당이 제대로 하는 게 뭐 있느냐, 오세훈 후보를 찍겠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만난 김모(50)씨도 “박 대표 사건 때문에 오 후보에게 마음이 굳었다”고 했다. 박 대표에 대한 동정까지 더해진 최근 서울시장 선거 판세를 반영하고 있었다.
20~30대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한국 외국어대에서 강의를 듣고 나온 4학년 여학생인 백하나(25)씨에게 “여성후보를 찍을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요즘 시대에 여성이라는 점이 더 이상 강점이 되지 않고, 지방선거인데 여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야당을 찍는 것도 맞지 않다. 친구들이나 나나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20대 주부 구해경(28)씨 처럼 “법무장관이라는 주요직책을 잘 수행한 강 후보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화려한 경력의 커리어 우먼이라는 강 후보의 강점이 젊은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선거판도에 중요한 호남 표심도 제대로 마음을 정하지 못한 듯 했다. 금천구의 한 식당 주인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호남 사람들이 지금은 우리당으로부터 마음이 떠났고, 민주당에도 마음을 주지 못해 갈피를 못 잡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일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도 호남출신 응답자의 부동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런 가운데 선거가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각 후보마다 막판 전략 짜기에 고심하고 있다. 오 후보측은 “정책과 칭찬의 선거기조로 지금의 지지율을 선거당일까지 끌고 가겠다”는 수성전략을 세웠다. 반면 강 후보측은 반전카드로 72시간 연속 유세를 고려하는 등 “길거리에서 쓰러지더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배수진을 쳤다.
이밖에 민노당 김종철 후보는 “한나라당 독주를 견제할 진보세력의 대안 정당론”을 앞세워 진보성향의 부동표를 끌어온다는 전략이고, 민주당 박주선 후보는 “선거이후 민주평화개혁세력 결집”을 내세워 서울의 호남 표를 잡겠다는 생각이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 관심 못끄는 서울시장 공약대결
서울시장 후보들의 주요 개발공약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공약 자체에 별 관심도 없고, 공약을 보고 표를 찍는 것은 아니라는 분위기다.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의 용산 개발 공약에 대한 반응을 보기위해 용산 부동산을 찾았다. “용산을 국제업무지역으로 조성한다는 데 어떠냐”고 물었더니 S부동산의 김택중(44)씨는 “지난해 말 용산역 주변 일대가 국제업무지구로 지정돼 108층짜리 초고층빌딩 2개동 건립 계획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주변 업무지역은 평당 8,000만원을 호가할 만큼 천정부지로 뛰었는데도 매물이 없다고 했다. 시간이 문제일 뿐 어차피 이루어질 일이라 주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의 세운상가 철거 및 녹지광장 계획 역시 주민이나 상인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세운상가 주변 상인들은 “철거와 녹지화는 지난해부터 나온 얘기지만 공약한다고 될 일이냐”고 못미더워 했다. 오히려 이 공약은 세운상가 입주상인들의 큰 반발을 부르고 있었다.
전자제품점을 하는 이웅재씨는 “공원지하에 상가를 만들겠다는 데 지하상가가 성공한 예가 있느냐”면서 “청계천개발 3년 동안 가뜩이나 상권이 죽었는데 아예 씨를 말리려고 한다”고 역정을 냈다.
정진황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