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지방 선거를 보더라도 경기 지사 후보의 득표율은 당시 각 당의 전국 지지도를 정확하게 반영했다. 경기도가 농어촌, 공업지대가 섞이고 대도시, 중소도시가 혼재하는 넓디 넓은 지역이다 보니 그럴 것이란 해석도 있고, 팔도 출신이 골고루 섞여 있다 보니 그렇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그 정도가 심해 보인다. 쟁점, 공약, 인물 경쟁 따위는 희미하다. 오로지 ‘당’이다.
23일 수원에서 택시를 탔다. 기사에게 지방 선거 얘기를 꺼내자 30대 중반의 젊은 기사는 “볼 것 뭐 있어요? 무조건 한나라당 찍을 거에요”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짧은 답이 돌아왔다. “열린우리당이 미워서요.”
팔달구에 있는 진 후보 사무실을 찾았다. 진 후보측 고민이 깊어 보였다. 캠프 관계자는 “인물로 당 지지도를 돌파해야 하는데 후보에 대해 잘 모르는 유권자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그는“당최 유권자들이 선거에 관심이 없다”며 “선거 사무소가 들어있는 빌딩 안에서 조차 ‘진대제가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대로변의 플래카드와 언뜻언뜻 지나가는 선거용 차량만이 곧 선거가 있음을 알게 할 뿐 시민들의 표정은 무심해 보였다.
곳곳에 철조망을 단 군부대 담장이 가로지르는 경기 북부의 중심 의정부시에서도 선거열기를 느끼기가 어려웠다. 가능동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50대는 “장사가 안돼서 누가 나왔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50대 식당 여주인은 “(후보들)이름은 들어봤는데…”라고만 했다.
그러다 보니 정책이나 쟁점이 부각되지 않는다. 수도권정비법 폐지가 쟁점이라면 쟁점이다. 그나마 후보 들끼리는 열을 내지만 유권자들은 별 무관심이다. 김문수 후보가 “즉각적인 폐지”, 진대제 후보가 “보완을 통한 점진적 폐지”를 각각 주장하고 있다. 진 후보측은 앞서가는 김 후보에 대해 군 면제 문제, 120만 일자리 창출 공약의 현실성 문제 등을 걸고 나섰지만 좀체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오히려 선거 막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이 유권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소재다.
의정부역 앞에 늘어선 택시들 사이에서 50대 후반의 택시기사가 동료들을 세워 놓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박근혜, 멋 있잖아. 칼 찔려도 의연한 게, 열 남자보다 훨씬 나아.” 그는 “박 대표 때문에라도 이번엔 꼭 한나라당을 찍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기사도 “아무래도 김문수쪽으로 동정표가 많이 가지 않겠나”고 말했다.
반면 의정부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모(45)씨는 정 반대로 얘기했다. “너무 한나라당이 싹쓸이를 할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오히려 여당 쪽으로 표가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박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해 김 후보쪽은 신중하게 접근하는 반면 진 후보쪽에서 막판 악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지도 격차가 조금씩 좁혀지는 분위기에서 터져 나온 돌발 악재”(진 후보측) “한나라당 지지층도 늘지만 여당 결집력도 높아질 것”(김 후보측)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와중에 군소 후보들도 나름의 틈새전략을 세우고 있다. 민노당 김용한 후보측은 “부동층과 열린우리당 이탈 세력을 모아 한나라당 대 민노당의 대결구도로 끌고 갈 것”이라고 했고, 민주당 박정일 후보측은 “5건 정도의 방송 토론회 장을 적극 활용, 젊은 이미지로 승부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고양시 화정동의 한 부동산에선 즉석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당 지지자인듯 한 50대가 불만을 쏟아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게 문제야. 인물도 좀 보고 토론도 좀 보고 하지. 조금 싫으면 무조건 다 싫다고 해버리니….”그러자 부동산 주인이 맞받았다. “아, 이 사람아. 그래도 당이 미운데 어떻게 해."
이동훈기자 dhlee@hk.co.kr
■ 진대제-김문수 후보 부인 "내 남편에게 한표를"
진대제 후보의 부인 김혜경씨와 김문수 후보의 부인 설난영씨는 올해 53살, 동갑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은 남편들의 그것만큼이나 다르다.
진 후보 부인 김혜경씨는 중학교 가정교사를 했고, 남편과 함께 미 스탠포드대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김 후보 부인 설난영씨는 80년대 초반 구로공단 세진전자 노조분회장, 금속노조 남서울지부 여성부장을 지낸 노동운동가였다.
지금 두 사람은 공히 남편의 당선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경기도를 누비고 있다. 23일 오전 경기 미용협회 행사장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또 만났네요” “남은 기간 건강 잘 챙기세요”…동병상련의 애틋한 인사말이 오갔다.
하지만 유권자들을 상대로 남편을 찍어달라고 호소하는 데는 양보가 없었다. 김씨는 주로 진 후보의 이력과 삼성전자 신화를 소개했다. 마이크 잡고 연설하는 폼이 후보 뺨칠 정도다. 진 후보가 지사에 출마하겠다고 하자 “보따리를 싸서 도망가겠다”며 반대했다던 그다. 하지만 결심이 서자 누구보다 적극적이라고 한다.
김 후보 부인 설씨의 인사말 포인트는 ‘자다가도 잠꼬대로 나라 걱정하는 남편’이다. 누구보다 부지런했던 3선 의원 부인답게 그는 시장통과 거리를 누비는 대면 접촉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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