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섬의 이미지가 또렷하다. 낚시터를 배경으로 한 ‘섬’과 물위에 떠있는 절을 공간으로 삼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배에서 벌어지는 한 노인과 소녀의 기묘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활’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는 섬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관계의 단절을 그리며 소통을 꿈꾼다. 영화 속 등장 인물들도 하나같이 사회로부터 고립된 섬과도 같다.
세상을 향한 소통에의 의지와 그의 독특한 영상 미학은 해외에서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대다수 국내 관객들에게 그의 영화는 그야말로 섬에 불과했다. 관객들은 영화의 메시지를 받아 들이기도 전에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장면에 고개를 돌렸고, 여성계는 여자를 대상으로 한 광포한 폭력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베를린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이라는 프리미엄도 국내 관객과 그와의 만남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김 감독이 국내 영화계에서 더욱 외딴 섬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해 시사회를 거치지 않고 ‘활’을 2개관에서 개봉했던 그가 열세번째 작품 ‘시간’의 국내 개봉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알려졌다.
16일 발행된 영화 주간지 씨네21에 따르면 김 감독은 프린트 비용이나 홍보 비용을 건질 수 없기 때문에 개봉하지 않고 곧바로 방송사에 방영권을 팔기 위해 접촉 중이라고 한다. 대신 그는 25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극장에서 열리는 씨네21 주최의 독자 시사회를 통해 ‘시간’을 제한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시간’이 지난해 베를린영화제 필름 마켓에서 30개국에 팔린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국내에서의 단절감과 고립감 때문에 ‘문화적 망명자’를 자처한 그의 심정이 어느 정도 헤아려진다.
그러나 그의 영화 개봉을 기다리는 국내 관객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 시사회 이벤트에 응모한 관객은 6,000여명. 호기심에 응모한 사람도 있겠지만 여느 시사회 이벤트 보다 2배가 넘는 수치다. 지난해 김 감독이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참패하지 않았다”고 단정한 ‘활’의 관객은 1,487명. 분명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화에 목말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통스러울지라도 진정한 소통은 섬에서 나왔을 때 가능하다. 김 감독의 신작을 국내 극장에서 빨리 보고 싶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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