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은 24일 경의ㆍ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의 취소 이유로 2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쌍방 군사당국의 보장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쪽 정세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후자는 북한이 회담이나 합의사항을 깰 때 상투적으로 내거는 말이기 때문에 열차 시험운행 취소의 속사정은 ‘북한 군부의 몽니’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24일 북측 철도당국 명의의 행사 취소 전통문을 받고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13일 12차 철도ㆍ도로 연결 실무접촉에서 열차 시험운행에 합의한 뒤 북측 대남라인이 보였던 태도와 180도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북측은 13일 합의 이후 이어진 2차례의 실무접촉에서 열차 시험운행 시각, 방식 등의 세부사항 협의까지 응했다. 열차와 기념식장에 매달 플래카드 구호까지 정할 정도였다. 또 북측 검측열차를 운행하며 사전 점검을 마쳤고, 주요 행사가 열리는 개성역과 판문역에서는 북한 주민과 군인들이 23일 오후까지 역사 단장을 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모습이었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그런 북측이 마지막에 행사 취소를 통보한 것은 결국 군부가 거부의사를 접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애초 북한 군부는 철도 시험운행이 마땅치 않았다. 정전협정 상 비무장지대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군사당국의 안전보장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남측은 4월말 18차 장관급 회담을 비롯해 여러 채널을 통해 군사보장합의서 채택을 요구해왔다. 경공업 원자재, 비료 제공 등과 연계해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군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남측은 합의서 대신 행사 참가자 명단 교환을 통해 쌍방 지역에서 안전을 보장하자는 절충안까지 내놓았고, 북측 대남 라인은 이에 동의했으나 북한 군부가 막판에 반대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정부는 “북한 내부 조율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시험운행을 추진했지만 군부는 계속 반대했고 양측간 이견이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중을 주목하는 분석도 있다. 열차 시험운행도 김 위원장이 결심해야 되는 사안이고, 행사 취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막판에 군부쪽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본다면 향후 전망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김 위원장이 대남 유화 정책을 접고 다른 결심을 하는 전조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게 한다.
정부의 지나친 낙관론도 문제다. 통일부는 그 동안 “국가간 합의인데 북이 시험운행에 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북한 군부의 거부 움직임을 과소평가했다.
또 열차 시험운행에 너무 매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남쪽의 약점을 간파한 북측이 다른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시험운행 취소를 카드로 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반복되는 북한의 약속 어기기 행태를 응징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부분도 정부의 어려움이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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