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와 충무로가 일본과의 열애에 빠졌다. 방송계에선 일본의 유명 드라마 판권 확보 경쟁이 불붙었으며 영화계는 일본 소설 등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잇달아 제작한다. ‘한류(韓流)의 저변에는 일류(日流)가 흐른다’는 말이 실감나는 현실이다.
일본 원작 드라마와 영화 봇물
SBS는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 ‘연애 시대’를 23일 종영한 데 이어 일본 드라마를 기초로 한 ‘101번째 프러포즈’를 29일부터 방영한다. ‘너의 손이 속삭이고 있어’, ‘하얀 거탑’, ‘하늘에서 내리는 1억 개의 별’, ‘오렌지 데이즈’ 등 7편의 일본 ‘국민 드라마’도 외주제작사를 중심으로 국내 리메이크가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충무로는 일본 소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준기와 이문식이 호흡을 맞춘 ‘플라이 대디’를 포함해 ‘어깨 너머의 연인’, ‘반짝반짝 빛나는’, ‘프리즌 호텔’, ‘검은 집’ 등이 일본 소설을 밑그림으로 한 영화들이다. 김주혁 문근영 주연의 ‘사랑따윈 필요 없어’는 일본 인기 드라마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바르게 살자’와 ‘당신의 가방모찌’는 일본 영화 ‘노는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와 ‘가마타 행진곡’을 각각 리메이크 한다. ‘비룡전’과 ‘미녀는 괴로워’는 일본의 연극과 만화를 얼개로 삼고 있다.
새로운 감성에 대한 욕구와 산업적 필요
국내 대중 문화계에 ‘일류’가 출렁이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우리 정서와 거리를 두지 않으면서도 낯선 감성을 담고 있는 일본 원작이 새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반짝 반짝 빛나는’의 제작을 맡고 있는 영화사 싸이더스FNH의 김무령 프로듀서는 “일본의 소설들은 너무 무겁지도 않고 소재가 다양해 영화화하기 알맞다”고 말한다. 최근 충무로에 돈이 몰리고 신생사가 많이 설립된 것도 일본 원작의 영화화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소재가 바닥을 드러낸 상황서 일본 소설은 쉽게 스크린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시장 진출이라는 산업적인 고려도 작용하고 있다. 검증된 소재에 한국적인 감성이 섞이고 한류 스타까지 출연한다면 일본에서 빅 히트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SBS 드라마 ‘요조숙녀’가 리메이크 판권료 5,000만원의 수 배에 달하는 돈을 받고 일본에 역수출 된 것이나, 5,000만원에 일본 드라마 판권을 사들여 만든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30억엔(약 250억원)을 벌어 들이며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것 등이 큰 자극이 되고 있다. 김형준 가드텍 대표는 “일본 소설 등을 원작으로 한 영화 대부분은 일본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시장과 일본 시장 동시 공략을 위해 일본 영화사가 참여하는 프로젝트도 등장하고 있다. ‘어깨 너머의 연인’은 영화 판권을 확보한 일본 아뮤즈엔터테인먼트가 싸이더스FNH에 제작을 의뢰해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 대중문화 허약체질의 반증
일본 원작의 대중 문화계 득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많다. 영화평론가 김영진 씨는 “일본 원작이 대거 영화화되는 것은 그만큼 한국 영화 산업의 토대가 허약하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일본 원작을 발판 삼아 일본 시장 공략에 나서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SBS 김영섭 책임프로듀서는 “리메이크 작품이라고 일본 시장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며 “국내 작가를 양성하고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결국 한류를 튼실히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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