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dies and gentlemen, move on, please.” (여러분 이동하시죠)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북측 안내원 김효정(24)씨의 이 같은 영어 채근을 듣고 깜짝 놀라게 된다. 황해북도 사리원이 고향이라는 김씨의 영어 실력은 원어민을 감탄하게 할 정도다.
23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경남대 주관 동북아대학총장협의회 국제 심포지엄에서도 김씨의 영어 실력이 화제가 됐다. 김씨는 이날 오전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강당에서 진행된 공단 현황 브리핑에서 영문 파워포인트 자료를 활용해 20여분간 개성공단을 완벽하게 홍보했다. 행사에 참석했던 외국인 대학 총장, 교수들은 “영어가 완벽하다”며 “Wonderful!”을 연발했다.
김씨는 그러나 북한 바깥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토종 영어 재원이다. 개성 북쪽 사리원외국어대 어문학부를 2004년에 졸업하고 무역원에서 업무를 담당하면서 영어 실력을 늘렸다고 한다. 그는 “외국에서 영어를 공부한 것처럼 유창하다”고 칭찬하자 “대학에서 5년, 어릴 때부터 치면 10년 정도 영어를 공부한 정도”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씨는 지난 1월부터 개성공업지구관리위에서 남측 관계자 40여명, 북측 직원 60여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2월 외신기자 초청 개성공단 홍보행사에서 처음 현황 브리핑을 맡은 후 영어가 필요한 행사에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씨의 원래 업무는 사무보조. 다른 북측 직원과 마찬가지로 오전 8시 개성 시내에서 출근, 오후 6시까지 일한다. 월급도 다른 북측 근로자처럼 57.5달러를 받는다.
평소에는 화장실 청소부터 사무실 집기 정리, 문서 수발 등 다양한 잡무를 처리한다. 관리위 관계자는 “영어가 필요한 행사에서는 홍보팀의 일원으로 일하지만 출근하면 우선 스스로 알아서 화장실 청소부터 하는 성실한 북녘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책상에는 영어로 프리젠테이션 잘 하는 법을 담은 서적, 개성공단 영문 소개책자가 꽂혀 있다. 영어 브리핑을 위해 틈틈이 읽고 또 읽는다고 관리위 관계자는 전했다. 23일 행사를 위해 전날 밤 퇴근도 미루고 사무실에 남아 브리핑 준비를 했다고 한다. 북측 관리위 관계자는 “그에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하면 ‘잘 알았다’고 답을 한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당연히 통일이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천편일률적인 반응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통일조국에서 당당한 전문직 여성으로 거듭나겠다는 꿈이 담겨 있는 듯했다.
개성=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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