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결제를 확대했다고요? 1차 협력업체들에게나 해당되는 다른 나라 이야기죠.” 인천부평구 십정2동 정밀판금업체 포커스정밀의 김환동 영업부장은 요즘 밀린 월급을 주기 위해 현금을 구하러 다니는 게 일이다. 반도체 검사 장비를 제작하는 A사에 각종 프레임을 제작, 납품하는 이 회사는 삼성전자의 3차 벤더다. 그러나 삼성전자한테 현금 결제를 받은 1차 협력업체들이 정작 2,3차 재하청 업체들에게는 현금 결제를 안 해줘 돈가뭄에 허덕인다.김부장은“1차 협력업체들이 차일피일 결제를 미뤄 통상 3,4개월이지나서야 현금을 받기 일쑤”라며“그래도 불만은 커녕 일을 계속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해야 하는 처지”라고토로했다.
상생을 위해 풀어놓은 돈이 제대로 흐르지 않고 있다. 대기업들이 앞다퉈대^중소기업 상생 차원의 현금결제를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1차 협력업체들은 예전의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2,3차 재하청 업체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은 지연결제다. 삼성전자의 경우 1차 협력업체에겐 통상15~30일 단위로 현금 결제를 해준다. 그러나 1차 협력업체들은 2,3차협력업체에게 90~120일이 지난 다음에야 대금을 지급한다. 한 3차협력업체 관계자는“예전 같이 어음만 끊어 줘도 이를 돌리거나 사채시장에서 할인 받아 자금을 융통할수 있을 텐데 말로만 현금 결제를
하는 통에 더 어려워 졌다”고 지적했다.
신속하게 현금 결제를 해줘도 내용을 살피면 사실상의 불공정 거래가 횡행한다. 한 2차협력업체 관계자는“납품과 동시에 현금결제를 해주는경우 1차 협력업체 입장에선 3,4개월미리 결제해 주는 것인 만큼 해당기간의 금융 이자 비용을 미리 까고주는 일이 흔하다”며“특히 이 이자를 납품단가 인하에 반영한 뒤 주는 경우에는 조사를 해도 드러날 일이없다”고 귀띔했다.실제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경고 이상의 제재가 부과된 사건은 1,741건으로 전년보다 5.6%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상생^협력이 확산되고 있지만 윗목인 2,3차 재하청 업체와 영세업체들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모든 경제 주체들이 소외되지 않고 신바람 나도록 제도적인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도요타처럼 1차 협력업체를 선정하거나 평가할 때 2차 협력업체에 대한 현금결제 비중 또는 지원실적 등에 큰점수를 주도록 해 자연스럽게 2,3차 협력업체까지 상생의 효과가 미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