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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격전지를 가다] <4>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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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격전지를 가다] <4> 제주

입력
2006.05.2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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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제주시 동문 재래시장. 상인들이 두세 명 씩 모인 자리마다 전날 발생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피습 소식이 화제였다.

D 과일 상회를 운영하는 부모(65)씨는 “세상에서 제일로 가여운 게 부모 일찍 떠나보낸 사람이시. 자기도 그렇게 갈 뻔 했으니 얼마나 가슴이 쓰리겠나”고 가슴을 쳤다. 옆 가게 상인 문모(55)씨도 거들었다. “그 고운 얼굴에 흉을 내다니 거 데쿠가?(그래서야 되겠나)”

연신 혀를 차는 상인들에게 “박 대표가 그렇게 불쌍하면 도지사 선거에서 한나라당 현명관 후보를 찍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문씨는 한참 뜸을 들인 뒤 “나는 그런 말 못 고르겠어(못 하겠어)”라며 자리를 떴고, 부씨는 “우리는 무조건 일 잘하는 사람을 뽑는다”고만 했다.

박 대표의 피습 사건이 바다 건너 제주도지사 선거에도 큰 이슈로 떠오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에 얼마나 호재가 될 지에 대해선 모든 캠프가 “아직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정치 쟁점에 따라 표가 휩쓸리는 뭍과 달리 제주도는 혈연ㆍ지연ㆍ학연 관계에 강하게 작용하는 특수한 선거 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 후보측은 23일 “부동층 흡수 효과는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투표일까지 효과가 이어질 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소속 김태환 후보와 열린우리당 진철훈 후보측은 “일시적 관심에 그칠 것”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김 후보측은 “사고 직후 여론조사(본보 22일자)에서 현 후보가 역전한 결과가 나온 것은 섬이 좁아 여론이 금세 들끓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일시적 현상’임을 강조했다.

한창 시끄러웠던 김 후보의 열린우리당 입당 번복 파문을 둘러싼 민심은 두 갈래로 갈려 있었다. 택시기사 문종철(55)씨는 “이래 착 저래 착 해분 싫다(이랬다 저랬다 하니 싫다)”고 한 반면 박귀유(71ㆍ서귀포시 대륜동)씨는 “한나라당이 잘 하고 있는 김 후보를 마음대로 쫓아내니 갈 데가 없어져서 그랬을 것”이라고 동정론을 폈다.

현 후보측은 다소 잠잠해진 입당 파문 이슈를 끌어 가기 위해 “김 후보가 ‘민주당_무소속_한나라당_우리당_무소속’ 등 정당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는 공세를 폈다. 이에 김 후보측은 “순간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극복했다”며 “오히려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누구나 당선시킬 수 있다는 중앙당의 거만함이 도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주장했다.

현 후보는 “중학교 졸업 이후 제주도를 떠났다가 이번 선거 직전에 갑자기 돌아온 ‘굴러온 돌’”이라는 공격이 가장 뼈 아프다. ‘우리 섬 사람’을 중시하는 제주도 선거에선 약점이다.

김 후보는 이 점을 파고 들어 특유의 스킨십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는 21일 오후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제주시 탑동 광장에 모인 유권자 1,000여 명과 일일이 악수를 하느라 와이셔츠가 흥건히 젖었다.

같은 날 오후 제주시 칠성로에서 지원 유세에 나선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이 “제발 식개집(상가)만 열심히 찾아다니는 도지사 뽑지도 말고, 괸당(아는 사람)만 뽑는 선거에서 벗어납시다”고 목청을 높인 이유다.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각 캠프가 분석하는 판세는 ‘혼전’이다. 어느 후보도 ‘10% 이상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택시 기사 임영중(65)씨는 “김태환 후보는 착실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 호미처럼 도정을 세밀하게 돌볼 것 같고, 현명관 후보는 트랙터처럼 도 경제를 크게 갈아 엎는 데 적자인 것 같다”며 “끝까지 지켜 보고 진짜 제주 일꾼이 될 사람을 찍겠다”고 말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 제주는 지금 공약 전쟁

제주도는 지금 공약 전쟁 중이다. 도지사 후보 세 명이 저마다 파격적 공약을 내놓은 데다 상대 후보의 공약을 배설물에 빗대 폄하하는 등 공방도 뜨겁다.

21일 오후 제주시 탑동 광장에서 무소속 김태환 후보의 지원유세를 한 김영훈 전 제주시장은 “한나라당 현명관 후보의 공약은 X공약”이라고 소리를 높였다. 이는 현 후보의 항공료 반값 인하 공약을 겨냥한 것으로, 도 예산을 지원해서라도 도민은 물론 관광객의 항공료를 현재의 50%로 내리겠다는 내용이다. 김 전 시장은 “자본주의 시대에 이런 천부당 만부당한 소리를 하다니 대기업 회장 출신이 맞느냐”고 비난했다.

현 후보는 김 후보가 도지사로서 추진해온 제주특별자치도법을 물고 늘어진다. 현 후보측은 “김 후보가 2년 임기 내내 지인들 경조사만 챙기다가 기업 유인책 등 핵심이 빠진 엉터리 특별법을 만들었다”고 공격하고 있다. “특별하지도 않은 특별법을 만들어 생색만 내고 있다”는 폄하도 나온다.

열린우리당 진철훈 후보도 지지 않고 “600억원의 예산을 편성, 해마다 도내 고교 졸업생 100명을 외국 대학으로 유학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김 후보와 현 후보는 “낙후한 서귀포시에 명문 외국대학의 분교를 유치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일축했다.

제주=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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