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가게에서 낯선 열매를 봤다. 다래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보다 좀 크고 빛깔은 검붉다할까, 검푸르다할까, 짙은 보랏빛이 돌았다. 점원에게 물으니 백년초 열매라고 했다. 아, 그 요구르트에 들어 있던 백년초? 그 맛을 떠올리니 흥미가 사라졌는데, 점원이 덧붙이기를 선인장 열매라는 것이다.
아, 백년초가 선인장이었구나! 그럼 이게 선인장 열매? 바싹 다가가 들여다봤다. 구미가 동했다. 그런데 “이거 그냥 먹는 거예요?” 묻자 사이다에 담가뒀다가 먹는 거란다. “그냥 먹으면 안돼요?” 다시 묻자 점원은 무슨 뜻인지 무심결에 고개를 저으며, 그래도 백년초 열매에 나만한 흥미를 보이는 손님이 없었던 듯 “관절염에 아주 좋대요. 들여가세요”권했다. 관절염이란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우리 동네 널찍한 골목에 못 보던 아저씨가 보따리를 풀어놓고 앉아 있었다. 떠돌이 헌책 장수였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이것저것 뒤적이다 고른 책이 ‘미국동화집’이었는데, 인디언 소년이 나오는 한 동화에 ‘선인장 열매’가 나왔다. 선인장에 열매가 다 있다니! 그걸 먹는다니! 꼭 한 번은 맛보고 싶었다, 선인장 열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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