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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보톡스에 중독된 우리 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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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보톡스에 중독된 우리 도시들

입력
2006.05.2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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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어떤 연령대의 얼굴로 살아갈 지 거의 의학적 메뉴판에서 고르기만 하면 되는 시대다. 누군가 우연히 발견한 보톡스란 약액이 우리의 안면 주름살과 맺게 되는 독특한 관계 때문이다. 하필 이름에 독소를 뜻하는 ‘톡스(tox)’가 들어있는 그 이름만큼 꽤나 아이러니를 갖고 있는 약으로 보인다.

● 세월의 더께와 주름 사라져

그저 썩은 소시지 정도에서나 발견되던 바이러스가 어느덧 젊음이나 아름다움과 관련된 많은 꿈같은 언어들과 함께 뒹굴게 되었으니. 그것도 국소적이나마 피부 근육의 일시적인 마비, 이완, 주위의 신경망으로부터의 절연 등 얼핏 들으면 섬뜩한 약리작용을 거쳐서.

또 대략 6개월마다 주사를 다시 맞아야 한다는 말이고 보면 인류가 처음 겪게 되는 한시적 외모란 아이러니도 있다. 정신이나 지혜, 경험 등은 그 자리에 머문 채 이 묘한 당착의 위약(僞藥)은 어떤 젊음의 한 시간대로 즉단의 여행을 허하는 비자만 발급한다.

우리의 도시 역시 한때는 넉넉한 시간의 더께를 쌓아오던 존재였으며 충분히 더딘 균열로 그 표면에 ‘고결한’ 실금들, 즉 정신과 경험과 관조와 지혜의 주름을 가진 공간이었다.

글로벌한 시야에서 보더라도 그 주름은 분명 쉽게 그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의 역사성을, 또 흥미로운 정체성을 수줍은 듯 숨기고 있는 시간과 물질의 골들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도시는 참을성을 잃고 보톡스 같은 신속성과 즉단성, 무마의 제스처에만 몰입하고 있다. 시간을 간직한 것과 단순히 낡은 것 간의 구분을 못하고 도시 신경망의 오래된 말단만 보면 땀땀이 개발 본능에 따른 수액을 서둘러 주사하고 만다.

오래된 것, 즉 시간의 축적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는 것을 만나는 순간 도시는 ‘고(古)’란 우울한 톤의 타이틀을 달아주며 우리 시야에서 비껴있는 어느 으슥한 게토로 몰아내거나, 혹 누가 볼새라 순식간에 이를 폐기해 버릴 기회만 노리고 있다.

마치 보톡스가 신경세포 내의 근육신경 전달물질의 저장소를 일시적으로 파괴하듯, 우리의 기억 가득한 거리의 함몰된 주름, 그 친근한 풍경들은 익명의 개발 주체들에 의해 마비, 이완, 절연 끝에 끝내 어느 날 폐기, 삭제되고 마는 것이다.

● 개발에 밀려나고 이미지만 치장

마침 그렇지 않아도 현대 사회가 새로이 규정하고 있는 건강한(?) 윤리 중 하나가 끊임없는 소거와 순간적인 복제에 이은 폐기의 시퀀스 아니었던가. 건축 역시 도시나 전원 가릴 것 없이 새로움, 매끄러움 등의 약액이 마치 표면에 도는 듯한 빛나는 이미지들만 생산해내는 일에 불문율처럼 매달리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른바 지적인 건축이란 박피의 어슬한 톤과 섬약한 피질의 촉감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일종의 페티시즘 행위일 거 같다. 어차피 일상에서 어떤 대상의 내용, 내면, 내연, 본질 따위는 피복, 피막, 포장, 당의, 표피, 표층, 스킨, 스크린, 이미지, 아이콘 따위의 상징적 경험으로 간단히 대체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 아닌가.

김헌 건축가ㆍ어싸일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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