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 공사를 거쳐 지난해 10월1일 개장한 청계천을 찾은 인파가 벌써 2,000만 명을 넘었다. 그 많은 발길과는 달리 도심 한복판에 만들어진 토목공학적 성과에 나는 여전히 거부감을 느낀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하다.
아스팔트 바닥이나 쓰레기더미 위에 만들어져 이제는 시민의 훌륭한 쉼터로 자리잡은 여의도나 난지도의 공원과 마찬가지로 뚝섬의 서울숲을 사랑하니까. 다만 저절로 정이 가는 여의도 샛강의 생태공원이나 양재천과 달리 청계천에 다가가면 마음의 물줄기가 툭 끊긴다.
■무엇보다 가파르게 세워진 콘크리트 옹벽과 난간 구조물의 팍팍한 인상이 부담스러웠다. 청계천의 그런 주관적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날이 어둑어둑할 무렵의 퇴근길에 청계천 옹벽 위의 가로수가 제법 탐스럽게 꽃을 피워올린 것을 보았다.
옹벽 위의 좁은 보도 한복판에 심어져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이팝나무였다. 아직 어려서 흐드러지게 꽃송이를 달진 못했지만 하얀 꽃을 이고 줄지어 선 모습이 장관이었다. 유성온천의 이팝나무 가로수에서 느낄 수 있었던, 상쾌한 포만감을 머지 않아 서울 한복판에서도 맛보게 될 모양이다.
■'이팝나무가 초록 잎사귀 위에/ 하얀 쌀밥을 파실파실 피워 날아갈 듯/ 깔아 놓았다./ 하얀 쌀밥이 바람에 날아간다./ …순결한 흰밥은 하늘에 있고/ 이팝나무 위 둥둥 떠가는 구름을 타고/ 제삿밥처럼/ 소복소복 담겨 부풀어오르는 것이 어미들 가슴 속에/ 기어코 이팝나무 꽃을 물질러 놓았다.
'(박정남 '이팝나무 길을 가다'에서) 시가 쌀밥 주변을 맴돌듯, 제대로 꽃을 피운 이팝나무를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밥그릇에 쌀밥을 고봉으로 담아놓은 것 같다. 그래서 흔히 풍요의 꽃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그것은 풍요의 꽃이 아니라, 풍요의 꿈을 의탁했던 가난의 꽃이다. 꼭 이맘때부터 보리가 익을 때까지의 허기가 빚은 신기루였다. 그것을 풍요의 꽃으로 기억하고, 반기는 것은 가난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저마다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에게는 그것조차 그립고 아름답다.
기성세대는 대개 그런 사람들이어서 '가난의 추억'은 늘 화제가 된다. 그런데 지금 젊은이와 아이들은 그런 추억을 가질 수 없다. 겪을 일이 드물고, 겪더라도 함께 겪는 게 아니어서 외롭다. 성장이 주춤해지면서 거꾸로 '풍요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10년 후 크게 자란 청계천의 이팝나무가 부디 '풍요의 추억'을 피워 올리지 않기를.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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