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동도 않던 5·31 지방선거 판세가 요동하기 시작했다. 선거일이 임박하면서 후보들에 대한 판단이 이뤄진 결과라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아니다. 워낙 충격적인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 때문이다. 사건 후 여론조사결과에서 보듯 표심의 유동은 예상된 한나라당의 압승 구도를 더 굳히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유야 따져볼 것도 없다. 가뜩이나 현 정권이 해온 짓이 못마땅하던 판에 이런 일까지 터졌으니 심사가 더욱 틀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정서지만 오해의 여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이건 정상적인 지방선거라고 하기 어렵다. 지방선거가 본래 의미를 잃고 갈수록 중앙정치의 하부구조로 예속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근본적으로 취약한 지방자치 기반
이에 대해 여러 해석을 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에선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유난스러운 주거 이동성을 근본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최근 통계에서 우리 국민은 결혼 후 집 장만에 평균 10년이 걸리고 이 동안 2년마다 모두 5번 이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죽을 때까지는 아마 서너 차례 더 이사할 것이다.
이는 전국 평균치므로 도시지역 주민의 경우는 훨씬 잦을 것이 틀림없다. 굳이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지금 사는 집이나 동네에 뼈를 묻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결국 대부분의 국민에게 지금의 주거지는 늘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이 급속한 도시화에 따라 삶의 유동성이 커지면서 부동산값, 학군, 전직 등 이사 요인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는 10여년 전 중앙집중권력의 분산과 민주화 등 명분으로 지방자치를 도입할 때 거의 고려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현재 지방자치, 혹은 지방선거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은 모두 여기서 파생된다. 주거지에 애착이 없으니까 누가 지역살림을 맡든 관심이 갈 리도 없다. 실제로 지난 달 중앙선관위가 조사한 지방선거 관심도는 고작 46.4%에 불과했다. 관심도와 투표율이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지방선거는 투표율이 절반에도 크게 못 미치는 최악의 무관심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무관심이니 뭐니 해도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는 아무리 못해도 60% 이상의 투표율로 구색은 맞춘다. 도대체 이 정도 투표율에서 절반 이상의 압도적 표로 당선돼 봐야 전체 유권자의 20% 남짓한 지지를 얻는 게 고작인 지역대표에게 무슨 애틋한 기대가 실릴 것인가. 그러니 현재의 지방선거는 그저 정치적 야심을 가진 그들끼리의 한바탕 놀음으로나 치부될 뿐이다.
대선이나 국회의원선거 때와 하나 다를 것 없이 지방선거에서도 똑 같이 유권자의 정파적 경직성이 두드러지고 고질적인 지역분할 구도가 흔들림 없이 유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후보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않고 공약에도 관심이 없으니 그냥 평소의 정치성향이나 판단에 따라 후보의 소속정당이나 보고 무심히 표를 던지는 것이다. 정부나 언론, 시민단체 등이 아무리 매니페스토 운동 따위를 부르짖어도 이런 상황에서 정책선거는 애당초 구두선이다.
혹 솔깃한 정책이 있다면 기껏 부동산 단기차익이나 노릴 수 있는 개발공약 정도일까? 외진 골짜기마다 별 필요성도 없이 마구 뚫리고 넓혀지는 도로나 산간 농촌마을에까지 흉물스럽게 널린 아파트 단지 등이 그 결과물이다. 과거 중앙정부의 자원배분기능이 작동했다면 어림없었을 낭비들이다.
중앙정치의 예속에서 풀려나야
이래서는 앞으로 10년을 더 보낸들 올바른 지방자치의 착근은 난망이다. 박 대표 피습사건은 투표율을 높이고 선거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데 일정한 효과가 있겠지만 지방선거의 기본취지로 봐서는 별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까지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제부터야말로 단체장의 정당공천 배제 등 중앙정치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제도적 방안 연구와 함께, 속보이는 선거용 정책이 아니라 정말로 국가 백년대계의 차원에서 전국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큰 그림을 그려나갈 필요가 있다.
지방선거를 중앙정치의 하부구조로 계속 놓아두어서는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어렵고, 지방자치가 활성화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국가발전의 동력을 얻기 어렵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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