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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獨對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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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獨對가 어때서…

입력
2006.05.2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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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산업자원부장관을 지낸 이희범 무역협회장이‘장관이 대통령을 독대하기 힘들어 정책설득이 어렵다. 하지만 나는 독대를 했고 일을 잘 해냈다’는 폭로(?)를 하자 일부 언론들이 이를 빌미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을 마구 비판해댔다.

지난달 한명숙 국무총리 내정 사실이 발표됐을 때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며칠 전 대통령에게 여성총리의 필요성을 건의했다”고 밝혔고, 당 관계자는 “정 의장이 노 대통령과 독대했을 때 한명숙 의원을 거명했다”고 비화를 공개했다. 독대를 ‘비밀 면담’으로 오해한 부적절한 발언들이 아닐 수 없다.

■독대(獨對)는 제도다. 벼슬아치가 다른 사람 없이 혼자 임금을 대하여 정치에 관한 의견을 아뢰던 일이었다. 중국 당(唐)ㆍ송(宋)시대에 만연했고, 우리는 세종 성종 숙종 등 비교적 관료조직이 탄탄하고 민의를 잘 수렴했던 시대에 이에 대한 기록이 많다.

왕이 벼슬아치를 별도로 불러 정사를 논의하는 것을 소대(召對)라 했고, 문무백관이 번갈아 임금을 알현하는 것을 윤대(輪對)라 했다. 소대나 윤대는 대부분 1대 1 면담의 형식으로 이뤄졌다. 어전(御前)독대에는 사관이 참석해 대화내용을 기록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그것은 통치를 위한 중요한 제도였다.

■독대가 ‘둘만의 밀담(密談)’으로 변질되면 폐해가 크다. YS 시절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가 밀지(密旨)를 빙자해 소통령 행세를 한 것이나, DJ 시절 동교동 핵심인사가 높은 분의 뜻임을 가장해 전횡한 것이 대표적 예다.

극심한 권위주의 시절엔 대통령 경호실장과 중앙정보부장 사이의 치열한 밀담 경쟁이 10ㆍ26사태의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청와대가 “안방정치, 가신정치, 밀실정치의 산물이라는 폐단이 있어 독대를 금지하고 있다”고 밝힌 이유와 맞닿아 있다. 이런 뉘앙스 때문에 최근의 논란에서 청와대가 과민반응을 보인 듯하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가정보원장과의 주례 독대를 없애고, 이후 정부 고위인사가 혼자 대통령을 만나게 될 경우 비서실장이나 수석들을 반드시 배석시킨다고 한다. 이를 들어 독대가 없어졌다고 자랑하는 것 역시 오해다. 토론과 협의체만으로 국가의 모든 문제를 판단할 수는 없다. 대통령과의 1대 1 만남은 필요하며 없을 수도 없다.

그것이 독대가 되느냐 밀담이 되느냐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선택이다. 이번 논란에서 청와대가 “배석자 있는 독대도 인사나 정책 등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은 없다”고 단언한 것은 결벽성 과잉반응으로 보인다.

정병진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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