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경찰서 로비. 한 남자가 형사계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는 기자들을 상대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의 피의자 수사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기자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즉석에서 휴대폰으로 확인까지 해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그는 한 박 대표 지지모임의 대표였다. 박 대표 지지자들의 ‘수사 브리핑’은 이날 새벽부터 저녁 피의자 신병이 서울서부지검의 검ㆍ경합동수사본부로 넘겨질 때까지 수시로 이어졌다.
형사소송법은 ‘피해자는 변호인을 통해 범죄ㆍ수사 정보를 전달 받을 수는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폭행 범죄 등 일부 특수한 경우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지만 객관적인 제3자로서다. 그런데 이날 변호인도 아닌 피해자 지지모임 인사들이 피의자 수사를 손바닥 보듯 한 사태가 ‘공식적’으로 이뤄졌다.
서대문서 관계자는 “수사의 공정성을 우려하는 한나라당 당직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입회를 허용했다”고 했다. 경찰은 “피의자 조사는 별도의 다기능조사실에서 이뤄졌고 당직자와 지지자들은 대기실에서 지켜만 봤기 때문에 수사 참관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피의자 신문조서를 베낀 것이니 확실하다”는 지지자들의 설명이 맞다면 궁색한 변명이다.
경찰과 한나라당(및 지지자들) 사이의 수사 협조는 전날인 20일 밤 피의자 음주 여부에 대한 경찰청장의 서툰 발표 내용으로 한나라당과 지지자들로부터 난타를 당한 경찰이 택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건 옳지 않다.
박 대표 피습사건을 두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개탄이 나온다. 경찰서 로비에서 이뤄진 브리핑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경찰이나 한나라당, 박 대표 지지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김이삭 사회부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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