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브라운관 TV’입니다. 여러분의 거실이나 안방 한 쪽 벽의 중심을 떡 차지하고 앉아서 지난 반 세기 동안 사랑을 독차지해 왔던 TV의 맏형이지요. 브라운관 모니터는 컴퓨터 모니터로도 각광을 받아서 책상의 절반을 차지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요즘 들어 LCD나 PDP처럼 더 얇고 더 큰 벽걸이형 TV들이 많이 선호되지만 그래도 아직 가장 많이 사용되는 텔레비전이랍니다.
텔레비전이 보급되던 초기에는 제가 있던 집이 마을의 사랑방 구실을 했었고, 1960~70년대엔 흑백 만화영화에 푹 빠져들던 추억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저도 나이가 들면서 변신을 거듭해서 1980년대에는 컬러 브라운관 TV로 탈바꿈했고 이제는 평판형 TV들과 경쟁하기 위해 몸무게를 줄여 슬림형 브라운관 TV로 거듭 태어났답니다.
제 내부가 궁금하시다고요? 여러분께 각종 드라마나 뉴스를 펼쳐 보여드리는 앞면 유리(panel glass)가 바로 제 얼굴에 해당됩니다. 이 앞면 유리에는 <그림> 과 같이 유리잔 모양을 한 후면 유리(funnel glass)가 붙어 있고 그 끝에는 전자총이 달려 있답니다. 전자총은 매우 뜨겁게 달구어진 전극에서 이름 그대로 전자 빔을 발사하는 게 임무이지요. 컬러 TV라면 빛의 삼원색인 빨강색, 녹색, 파랑색 각각에 대응되는 세 개의 전자총이 달려있답니다. 그림>
전자총에서 튀어나오는 전자 빔 다발이 향하는 곳은 앞면 유리에 점점이 붙은 형광체 화소(畵素·pixel)들입니다. 가까이 다가와서 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세요. 커다란 화면이 직사각형의 작은 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답니다. 수만㎸의 강한 전압의 힘을 받아 날라온 전자 빔이 화소의 형광체를 때리면 빛(가시광선)이 튀어 나옵니다. 형광체의 종류에 따라 빛의 색깔도 달라지지요. 하나의 화소에 적녹청 세 종류의 형광체가 있고, 세 색깔을 섞으면 화소별로 어떤 색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답니다. 결국 어떤 아름다운 영상도 모두 만들어 낼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전자총은 서부영화의 총잡이들처럼 아무렇게나 전자 빔을 발사하지는 않는답니다. 전자 빔은 흔히 말하는 TV의 ‘주사선’ 순서에 따라서 화면의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훑고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브라운관 몸체에 붙어 있는 ‘편향 코일’이 전기 자기적인 힘을 이용해서 전자 빔의 방향을 매우 정교하게 조정하지요. 수평의 주사선이 보통 525개이고 1초에 60장의 영상이 화면에 만들어지니까 전자 빔은 1초에 통틀어 약 3만 번의 수평선을 그리게 되어 있습니다. 한 수평선에 화소가 700개만 있다 해도 전자 빔이 1초에 만드는 점은 무려 2,000만 개 이상이 된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보는 드라마나 영화의 화면이 제 몸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감이 잡히시나요? 눈 깜짝할 사이인 1초 동안에 여러분들이 눈으로 느끼는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세 개의 전자총이 100만 여개의 화소 단위별로 붙어 있는 형광체 점들을 수 천만 번 분주하고 정교하게 훑고 지나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TV 퀴즈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던, 저의 출생과 관련된 문제 하나 풀어보았으면 합니다. 제 이름이 왜 ‘브라운관’ TV일까요? 정답: 브라운은 1세기 전 브라운관을 발명한 독일 과학자의 이름입니다. 칼 페르디난트 브라운(Karl Ferdinand Braun)이 발명한 브라운관의 기본 구조는 지금도 그대로 브라운관 TV 내에 쓰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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