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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사악한 정치 테러가 노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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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사악한 정치 테러가 노리는 것

입력
2006.05.2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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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지도자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는 민족의 장래를 위해 선생을 쐈다고 외쳤다. 요한 바오로 2세 저격범인 터키인 알리 아그카는 제국주의에 반대해 교황을 시해했노라고 미리 쓴 쪽지를 지니고 있었다. 현대사의 대표적 테러리스트의 이런 언행에는 공통점이 있다. 황당무계한 테러 명분은 진정한 범행 동기와 배후를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정치 테러범이 고상한 명분을 떠드는 파렴치에 그저 분노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세상의 지탄과 핍박을 무릅쓰도록 사주하기 위해 배후세력이 꾸며댄 논리로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범행 명분이 거창할수록 간교한 음모의 하수인에 불과한 사실이 명백해진다. 세뇌와 자기암시로 범인 스스로 그 명분을 믿더라도, 지난 삶과 이력까지 변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정치 테러 진짜 표적은 국민

이런 사리를 모를 리 없는 배후세력이 거짓명분을 주입시키는 것은 세상을 현혹시킬 목적이다. 정치 지도자에게 위해를 가해 정치흐름을 바꾸려는 테러가 더 없이 사악한 이유다. 대중이 기댈 인물과 희망을 앗아갈 뿐 아니라, 분노할 대상과 경계할 변화를 올바로 가늠하는 것을 방해한다. 정치 테러의 진짜 표적, 최대 피해자는 그래서 정치의 주인인 국민이다.

백범 암살은 격동하던 해방정국에서 민족진영의 와해와 친미우익세력의 주도권 장악에 결정적 전기가 됐으나 대중은 이를 이내 깨닫지 못했다. 요한 바오로 2세 저격도 뚜렷한 근거없이 소련이 배후라고 선전돼 이탈리아 등 서유럽 사회의 좌파 대두와 집권을 방해했으나, 나토 군 정보기관들이 공조한 비밀공작이라는 추적보도가 지금껏 이어진다.

아그카는 다른 암살범행으로 군 교도소에 갇혔다가 쉽사리 탈옥, 교황을 저격한 뒤 줄곧 횡설수설하며 배후는 끝내 함구했다. 종신형을 살던 아그카가 25년 만에 석방되자 터키 군은 48살인 그를 병역미필이라며 입대시켜 다시 사회에서 격리했다.

박근혜 대표를 노린 테러범을 안두희나 아그카처럼 음모의 하수인이라고 믿을 증거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범행했다는 인물을 두고 경찰이 지레 개인적 소행을 강변한 것은 정치적 고려가 앞선 탓에 본분을 망각한 것으로 비친다.

테러범의 폭력전과와 없는 음주사실부터 강조한 모습에서 국민 인식을 편한 대로 이끌려는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진 경찰을 외친 것과는 딴판으로, 정치 테러에 무기력했던 자유당 때 경찰을 떠올리게 한 잘못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과거처럼 경찰의 대응이나 정치세력의 이해에서 곧장 음모를 유추하는 것은 어리석다. 아그카의 예가 시사하듯이 정치 테러의 배후는 공식제도와 무관한 은밀한 곳에 존재한다. 정치 테러의 배후가 밝혀지지 않는 이유다. 이번 사건도 배후 음모가 있더라도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범인이 옥살이에 원한을 품고 무고한 박 대표를 보복대상으로 삼았다고 쉽게 믿는 것은 배후세력에게 농락당하는 것일 수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범인은 음모의 하수인으로 부리기에 아주 적합한 면모를 지녔다. 가출소 보호관찰상태인 범인이 한나라당 집회에서 난동을 부린데 이어 잔혹한 테러를 자행한 것을 자포자기 범행으로 여기는 것도 안이하다.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한 범죄자는 상식을 벗어나는 반대급부를 대가로 중대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범행현장 주변에서 공범관계를 찾는 것도 별 의미없다. 테러 공범은 서로 모르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 테러 배경 냉철하게 살펴야

한층 긴요한 것은 정치 테러의 사악한 의도를 경계하는 것이다. 이번 테러에 배후가 있다면 이른바 증오의 정치를 부추겨 사회적 대치를 강화하려는 목적을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유력한 대권 후보인 박 대표의 불운을 은연중 국민 뇌리에 심으려는 간교한 의도까지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 어느 때보다 사생결단하는 추악한 싸움이 우려되는 대선 정국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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