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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법관 인선의 다양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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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법관 인선의 다양성 논란

입력
2006.05.2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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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법원 구성을 보수와 진보의 대립 구도로만 들여다보는 것은 표피적이다. 19세기 초 토크빌이 간파한대로 “모든 정치적 문제가 사법적 문제로 귀착된”미국의 대법원이 어떤 성향의 법관들로 채워지느냐는 것은 미국인들의 일상사와 정치적 행동을 좌지우지하는 파괴력을 갖는다.

때문에 새 대법관이 지명될 때마다 낙태와 동성애 같은 이슈를 두고 그가 진보적 관점을 지니는가,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가를 따지는 이념 전쟁이 치러진다. 하지만 이게 대법관 구성을 이해하는 전부는 아니다.

대법관의 이념적 지향성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기준이 헌법의 해석과 법원의 역할에 대한 후보자의 사법적 철학이다.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지명한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의 취임식에서 얼리토가 “헌법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법대에서 법을 만들지 않는 법관”임을 강조했다.

‘해석주의자 얼리토’를 치켜세움으로써 낙태나 동성애 사건에서 기존 법 해석을 뒤엎는 이른바 ‘행동주의 법관’들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대법원 구성의 이념적 대립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우리의 경우 미국식 보혁 논쟁 대신 ‘다양성’이 대법관 인선의 화두가 되고 있다. 대법관의 정치적 신념과 정책 지향성에 대한 논쟁이 겨우 불붙기 시작한 상황에서 헌법 해석을 둘러싼 대법관의 사법적 철학에 대한 성찰은 아득히 먼 얘기처럼 들린다. 그나마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 논란을 통해 이전의 법원 질서를 깨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 데서 위안을 삼을 만하다.

7월 대법관 5명의 교체를 앞두고 지난해 11월 대법관 3명의 제청 과정에서 일었던 다양성 논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번 대법관 인선 때 기수 파괴, 서열 무시의 충격을 겪은 정통 법관들은 다양성 자체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을 반영한다는 명분은 곧 기존 법관 질서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정통 법관들이 법원 내부에서 최소한 3명이 대법관에 임명돼야 한다고 배수진을 쳐 최대한 외부 인사의 진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대한변협은 젊은 대법관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정통 법관들을 지원 사격하고 있다. 젊은 대법관이 임명되면 퇴임 후 생계를 위해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명분 뒤에는 사법부의 급속한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 논리를 감추고 있다.

반면 참여연대를 비롯한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난 가을 대법관 제청에 이어 이번에도 “대법관이 승진 경쟁의 최종점이 아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진보적 인사들을 더 많이 대법관으로 진출시키는 게 이들의 목표이다.

분명한 것은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 논쟁 자체가 사법부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법원 검찰 시민단체 등 각 직역이 정파적 이해에 치우칠수록 다양성 논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사법부의 독립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존 로버츠 미 대법원장은 인준 통과 후 “내가 책임질 대상은 민주당도 공화당도 아닌 오로지 미국 헌법일 뿐“이라고 말했다. 7월 비게 될 5자리의 대법관 자리가 우리의 헌법과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갈 든든한 인물들로 채워지길 기대해 본다.

김승일 사회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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