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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르포-직접 가봤더니/ 보호관찰 10, 20代 6명 좌충우돌 취업 준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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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르포-직접 가봤더니/ 보호관찰 10, 20代 6명 좌충우돌 취업 준비기

입력
2006.05.2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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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이요? 재작년 겨울에 군고구마 장사를 했어요.”

지난 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서울남부종합고용안정센터 11층. 6명의 청년들이 청년층직업진로프로그램(CAP)에 참여하고 있었다. CAP는 청년층에게 면접, 자기소개서 쓰기 등 취업 전략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다.

고졸 3명, 중학교 중퇴와 고교 중퇴 각각 1명, 중학생 1명 등 이번 참가자 6명은 모두 폭력 절도 등 범죄로 법무부의 보호관찰을 받는 중이다. 보호관찰대상자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부터 썼다. 군고구마 장사를 유일한 경력으로 꼽은 중학생 형택(16ㆍ가명)군이 한숨이다. 이름 생일 쓰고 나니 채울 게 없다.

초등학교 입학과 졸업을 나누고 중학교 이름까지 적어넣어 간신히 3줄을 만들었다. “지금은 어려서 어쩔 수 없다지만 나이 들어서도 이렇게 이력서에 쓸 게 없으면 정말 비참해질 것 같아요.”

옆에서 붓방아를 찧으며 끙끙대던 태균(18ㆍ가명)군의 말이 걸작이다. “그러게. 차라리 아이들 때린 것을 쓰라고 하면 몇 장은 더 쓸 수 있을 텐데 말이야.” 태균군의 농담에 온통 웃음 바다가 됐다.

중학교를 중퇴한 영환(21ㆍ가명)씨가 자기소개서를 완성했다. 장래계획은 “돈 많이 버는 것”, 가정환경은 “그럭저럭 화합이 잘 됨”. 프로그램 담당자 정영환 직업진로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정 팀장은 “솔직해야겠지만 멋지게 포장하는 법도 기술”이라고 조언했다.

태균군의 자기소개서에는 “무성의하다”는 이유로 빨간 줄이 그어졌다. 태균군은 장래계획란에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달랑 적었다. 운동장만한 빈 공간이 민망했던지 다른 글씨보다 3배는 크게 썼다. 태균군은 “정말 내 꿈이 뭔지 모르겠어요. 지금부터 생각해봐야겠어요”라고 말했다.

정 팀장은 이번 프로그램을 맡기 전 걱정이 많았다. 보호관찰 중인 아이들이 탈을 내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기우였다. 6명의 눈빛은 진지했고, 분위기는 유쾌했다. 참여도 또한 대단했다. 프로그램이 진행된 4일간 전원 100% 출석했다.

모의 면접 시간. 성원(21ㆍ가명)씨만 양복을 챙겨 입었다. 넥타이가 어색한지 자꾸만 목에 손이 갔다. 면접관 질문에 진땀을 빼던 성원씨가 마지막에 ‘한 건’ 했다.

계획을 묻는 질문에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멋진 답을 내놓은 것이다. “절대 준비한 게 아니다”라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면접이 어렵긴 어렵네요. 집에서 거울 보며 연습을 많이 해야겠어요”고 말했다.

고교 때 받은 솔선 수범상을 포상 경력에 적어 넣은 선택(24ㆍ가명)씨는 말이 입안에서 우물거린다. 특수용접, 자동차 정비, 화훼재배 등 자격증이 무려 3개인데도 백수다. “사소하게 여겼던 내 문제점이 면접에선 큰 약점이 된다는 걸 배웠어요. 급한 성격도 고치고 말도 자신감 있게 또박또박하는 습관을 기르겠습니다.”

종훈(20ㆍ가명)씨는 고깃집 아르바이트 경력을 살려 “고기 굽기가 특기”라고 말했다가 면접관에게 “장난하느냐”며 된통 혼이 났다. 면접관의 눈을 안 마주친다는 지적도 받은 종훈씨는 “분위기 좀 띄우려다가 혼났다”며 “자신 있게 특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배워야겠다”고 말했다.

박종선 서울지방노동청 남부지청장은 “문제아로 낙인 찍힌 아이들은 주위 편견도 문제지만 스스로 패배감에 젖어 못 헤어나오는 게 더 심각하다”며 “비행ㆍ탈선 청소년을 위한 직업진로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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