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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어느 날 여고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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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어느 날 여고시절

입력
2006.05.2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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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동 종점과 남영동 사거리 사이에 교복 전문매장이 세 개 있다. 진열창 너머로 보이는 교복들이 하나같이 세련됐다. 그런데 그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직 채택되지 않은 디자인을 선보이는 건가? 내가 교장이라면 학생들에게 그런 맵시 있는 교복을 입히겠다.

운 좋게 나는 교복이 예뻤던 여고엘 다녔다. 여름 교복은 흰 블라우스를 안에 받쳐 입는 초록 점퍼스커트였다. 그 시절에는 드물었던, 머리 모양도 구두도 자유로운 학교였다. 숙녀용 스타킹과 하이힐과 퍼머만은 금지했다. 갓 개학을 했을 때 한 아이가 운동장에서 교장선생님께 야단을 맞던 게 생각난다.

방학 동안 퍼머를 하고 다니다 그대로 온 것이다. 퍼머를 한 짧은 머리가 어린왕자처럼 예쁘긴 했다. 그 학교니까 훈계에 그쳤지 다른 학교였다면 쓸데없는 분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현명한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의 행복지수를 높인다.

교복 전문매장 앞을 지나칠 때면 한 찰나 우울하다. 아버지 때문이다. “내가 너 때문에, 길 가다가 교복 입은 여고생만 봐도 가슴이 무너진다.” 단 한 번, 아버지가 나를 마주하고 속을 보인 말씀이었다. 내가 아버지를 모른 만큼 아버지도 나를 몰랐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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