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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슬픈 경계인, 재일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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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슬픈 경계인, 재일동포

입력
2006.05.2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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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일본인인 한국 국적의 재일동포 2세 정향균(鄭香均ㆍ55)씨.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도쿄(東京)도가 관리직 시험 자격을 박탈하자 10년 동안 끈질기게 법정 투쟁을 벌였던 그는 비록 패소했지만 일본 사회의 뿌리깊은 차별과 맞서 싸운 용기있는 동포로 우리에게 각인돼 있다.

● 민단·총련 화해 평가절하 유감

그의 친오빠이며, 동포 지식인으로 이름이 알려진 정대균(鄭大均ㆍ58) 수도대학도쿄 교수.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책 ‘재일 한국인의 종언’(2001년) 등의 저자인 그는 젊은 동포들에게 “될수록 빨리 일본 국적을 취득해 일본 사회의 진짜 구성원으로서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귀화 동포이다.

삶의 방식과 주장이 매우 다른 이들 오누이의 모습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재일동포의 고뇌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바뀌는 대변화의 길목에서 거듭나기 위한 동포들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엿볼 수 있다.

그 몸부림은 한마디로 재일동포로서의 정체성 찾기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인이 아니고, 일본인이면서도 일본인이 아닌 슬픈 경계인의 존재였던 동포들은 이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를 내외에 발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지난 17일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지도부가 역사적인 화해의 만남을 가졌다. 조국의 분단 이후 반세기 만에 이루어진 양 단체의 화해 선언은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유감스러운 것은 그 감격이 불과 며칠만에 현저하게 사그러들고 있는 상황이다. 주로 재일동포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상황이 역사적인 화해와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이다.

일련의 비판은 나름대로 근거와 설득력을 갖고 있다. 상황을 주도한 새로운 민단 집행부가 추진 과정에서 보여준 다소 조급한 행태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백번 그렇다 치더라도 양측의 화해를 편협한 정치적인 시각으로만 재단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민단과 총련이 함께 손을 잡은 것은 역사의 희생자인 재일동포의 입장에서 분명히 거듭남을 위한 제1보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고뇌하는 동포 위해 새싹 틔워

동포 1세가 전체 5% 이내로 급격히 줄어들었고, 매년 1만명의 동포가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있으며, 젊은 동포들 중 90%가 일본인 배우자를 선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낡은 이념 대결의 산물인 민단-조총련 구도를 극복하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변화의 시기에 고뇌하는 동포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귀중한 새 싹을 틔웠다는 것이 이번 화해의 본질적인 요소라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민단과 총련이 웃으며 얼싸안은 날 재일동포 원로 작가인 김석범(金石範ㆍ80) 옹이 소리친 환희에 찬 절규가 가슴을 친다. “너무나 기쁘다. 속임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 좋은 나는 믿어줄 것이다. 단지 퍼포먼스로 끝날지라도, 내일 또다시 싸움을 시작할 지라도….”

김철훈 도쿄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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