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지 3년 만에 주권정부를 세웠다.
이라크 의회는 20일 누리 카말 알 말리키 총리가 제출한 내각 구성안을 승인, 이날 거국 내각이 출범했다. 지난해 제정된 새 헌법에 의거해 출범한 알 말리키 총리의 내각은 전쟁 이후 점령국 미국의 보호를 받으며 가동했던 임시정부와 과도정부를 대체하는, 형식상 온전한 주권 정부이다. 이로써 후세인 축출을 위한 전쟁을 벌인 미국은 목표로 내세웠던 민주정부 수립을 마무리 지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번 정부 구성은 이라크 발전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알 말리키 총리의 새 정부는 표면적으론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 등 이라크의 주요 종파ㆍ정파를 모두 참여시킨 연립정부이다. 총선에서 승리한 시아파 정치블록인 통합이라크연맹이 총리 이외에 재무 석유 등을 포함해 17개 장관직을 차지하고, 쿠르드족과 수니파에도 각각 7개 장관직을 배분했다.
하지만 종파ㆍ정파간 갈등이 언제라도 이라크 새 정부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라는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내전을 방불케 할 만큼 심각한 종파간 분쟁을 잠재우고 이라크 내부의 분열을 봉합하기에는 주권 정부가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의회 표결을 2시간 연기했는데도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은 서로를 견제하며 내무 국방 국가안보 등 핵심 3개 부처의 장관직을 결정하지 못했다. 알 말리키 총리는 자신과 수니파인 살람 지캄 알 주바이에 부총리, 쿠르드족의 바흐람 살리흐 부총리가 각각 내무, 국방, 국가안보 장관을 당분간 대행하는 미봉책을 택했다. 요새나 다름없는 바그다드 중심의 그린존에서 알 말리키 총리가 36명의 각료와 함께 “치안 회복이 최우선 과제”라며 선서를 하는 순간에도 자살폭탄 공격 등으로 이라크 전역에서 적어도 33명이 숨지고 수니파-시아파 보복 테러로 희생된 것으로 보이는 시신 22구가 발견되는 등 혼란은 계속됐다. 21일에도 바그다드에서 폭탄 테러가 잇따르면서 이라크 주민 5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치는 인명피해가 이어졌다.
헌법 개정 논란 등 이라크 주권 정부의 미래에 암초가 될 요소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특히 새 헌법에서 도입한 연방제 조항은 이라크 국부의 원천인 석유자원으로 벌어 들이는 수익 배분이 걸려있어 각 종파가 사활을 걸고 대립하는 사안이다. 유전이 없는 지역을 지배하는 수니파의 연방제 철폐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종파 분쟁은 격화할 여지가 크다.
미국 등 외국 주둔군이 언제 이라크를 떠날 지도 관심사다. 알 말리키 총리는 치안 회복과 함께 외국 군대 철수 일정을 구체화하는 등 철군에 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2,600명을 파병한 이탈리아는 다음주 이라크 철군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라크 남부 사마와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 육상 자위대도 다음달 말 철수 시작을 검토하고 있다. 13만2,000여명이나 파병한 미국은 주권 정부가 치안 능력을 갖추는 것을 살펴보며 단계적으로 이라크 주둔군을 감축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라크에서의 전면 철수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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