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한나라당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분노였다. 당 전체가 노기(怒氣)에 휩싸여 있었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의 피습사건을 ‘우발적 범행이 아닌 제1야당 대표의 생명을 노린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정치테러’라고 규정하고 격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의원들은 선거운동 일정을 중단한 채 정부 당국의 조속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엄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조직적 계획적 정치테러’의 배후를 지적하지 않았다. 사건조사 결과도 나오기 전에 섣불리 이를 적시했을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따라서 ‘정치테러’ 규정은 다분히 수사과정을 지켜보고 있다는 경고 차원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날 오전의 비상대책회의, 오후의 의원총회에서 당초 의제인 선거대책은 뒷전이었다. 온통 피습사건을 규탄하는 목소리만 가득했다. 의원들은 “천인공노할 정치테러” “반문명적, 반인간적 폭거”라는 분노를 쏟아내는 한편 경찰의 미진한 초동수사 등 의문점들을 제시했다.
한나라당이 갖는 의문점은 ‘용의자가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에 맞춰져 있다. 경찰 발표대로라면 전과경력이 있는 지모씨가 사회를 향한 불만을 테러로 표출했다는 것인데, 정부나 여당 관계자이 아닌 야당 대표를 겨냥했다는 점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배후 여부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졌다. 김정훈 의원은 “지씨가 어떻게 박 대표의 유세일정을 정확히 파악한 뒤 문구용 칼을 구입해 현장에서 기다릴 수 있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현장에서 2, 3명이 박 대표를 비토하는 구호를 외치다 도망갔고, 열린우리당 기간당원으로 밝혀진 박모씨만 붙잡힌 점을 보더라도 지씨의 단독 범행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공모 세력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엄호성 의원도 “용의자 휴대폰에 26개 통화기록이 있는데 대략 2, 3명과 집중 통화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부분을 조사해 사건과의 관련성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택순 경찰청장도 도마에 올랐다. 김학원 의원은 “이 경찰청장이 ‘술취한 사람의 범행’ ‘미숙한 범행 수법으로 미뤄 배후는 없는 것으로 추정’ 등의 이야기를 한 것은 상식 밖”이라며 축소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김정훈 의원도 “단순 상해사건이나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몰아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선거기간인 만큼 흔들림 없이 선거운동을 해달라”는 박 대표의 말을 전하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유의사항도 당부했다.
▦로고송과 율동 자제 ▦선거연설에 정치테러 규탄 및 박 대표의 쾌유 기원 ▦정부 여당이 배후에 있는 듯한 예단과 언행 금지 등이다. 이런 신중한 자세에는 한나라당이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오해를 경계하면서 역공의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어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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