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선양(瀋陽)의 미 총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 4명의 처리를 놓고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됐다.
무엇보다 미국은 해외에 있는 재외공관을 통한 정치적 망명을 인정하는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망명이 허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이들에게 망명과는 구분되는 정치적 난민의 지위가 인정되면 미국행이 실현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최근 탈북자 6명의 제3국을 경유한 미국 입국을 처음으로 수용하는 등 탈북자 문제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미국이 이들 탈북자 4명을 총영사관 밖으로 내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문제의 탈북자 4명은 최근 선양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서 한국행을 위해 대기하던 중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미 총영사관에 담을 넘어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남자 3명, 여자 1명인 것으로 알려진 탈북자들은 모두 20~30대의 젊은이들로 지난 5일 다른 탈북자 6명이 처음으로 미국에 입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행을 결심한 뒤 담을 넘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미 총영사관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한국 총영사관의 중국인 경비원과 몸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탈북자들이 경비원을 끈으로 묶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이 이들 탈북자들에게 난민지위를 인정하는 데에도 크고 작은 걸림돌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미국은 탈북자들의 미 공관 ‘무단진입’을 자제해 줄 것을 강력히 희망해 온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탈북자들의 미 공관 진입이 빈발하는 상황은 달갑지 않다.
또 난민협약에 따라 난민지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의 난민지위 판정이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주재국, 즉 중국과도 협의를 해야 한다.
중국은 탈북자들에게 난민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강제 북송까지 시키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난민지위 인정에 대한 대중 압력을 높일 경우, 미중 외교 마찰이 초래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중국이 탈북자들의 제3국을 경유하지 않은 직접 미국행을 묵인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이 같은 선례를 남길 경우, 중국과 북한간에 긴장이 조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을 일단 제3국으로 옮긴 뒤 그곳에서 난민인정 절차를 밟을 수도 있으나 이 같은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은 미국으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 탈북자들의 제3국행을 용인할지도 미지수다.
또 탈북자들이 몸싸움 과정에서 보다 과격한 행동을 한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국제규범이나 중국 실정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엔 그만큼 미국의 운신폭이 더 좁아지게 된다. 역으로 미국이 무단진입 수용불가라는 결정을 내릴 경우엔 탈북자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원칙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이들 탈북자 처리를 놓고 장고를 거듭 하면서 가능한 ‘조용한’해법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미국이 중국에 정공법을 택해 탈북자 난민인정에 대한 대중 압박을 본격화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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