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시론] 첫 '기자의 날'을 맞으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시론] 첫 '기자의 날'을 맞으며

입력
2006.05.20 00:07
0 0

오늘 5월 20일은 기자협회가 제정한 첫 ‘기자의 날’이다. 1980년 봄 군부독재의 언론검열에 반대해 제작 거부에 나섰던 기자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사회적 소통에 중차대한 책무를 진 기자들에 기자정신을 되새기게 한다니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날을 맞아 기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보낸다.

언론산업의 위축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숫자는 늘었다. 분야의 다양성도 늘어 기자라는 하나의 정체성 안으로 그 많고 다양한 기자들을 구겨 넣기도 어려워졌다. 전 분야의 기자들을 상통하는 직업이념이 이 시대에도 가능할까 하는 의문조차 든다. 정체성은 흐트러지고 정신적 지주가 될 기자정신 혹은 직업이념도 기자들을 다 잡아주기엔 선명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세상살이가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 말하지만 기자의 삶은 그와는 다른 방향을 걷고 있는 듯 하다. 매일같이 거론되는 언론산업의 위기는 기자들의 삶을 팍팍하게 조아온다. 위기를 이유로 자율성은 전에 없이 위축되어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지위는 나날이 축소되고 있다. 같은 이유로 언론산업은 신자유주의적 선회를 꾀하면서 노동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2006년 언론재단의 통계에 따르면 신입 기자들이 기자 직을 택한 이유 중 첫번째는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직업”일 거라는 믿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믿음을 배신하고 있다. 중진 기자들은 언론사를 떠나 기업으로, 공공기관으로 몸을 옮기고 있다. 이직을 꾀하고자 하는 잠재적 숫자까지 헤아리면 과히 엑소더스라 칭할 만하다.

사회적 소통에 중추적 역할을 할 기자 세계의 흔들림으로 우리의 사회적 소통의 질은 바닥을 기고 있다. 어두운 구석을 다 훑어내 사회적 대화의 중심이 되어야 할 기자와 기자정신의 흔들림은 사회적 흔들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자들의 위기를 한 직업의 위기 이상으로 파악하며 관심을 두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기자가 되살아나고, 사회적 소통이 건강해지고, 이어 사회가 활기를 띠기 위해서 사면초가에 처한 기자들의 제 몫 찾기는 시급해 보인다. 온갖 조건이 가하는 압력을 떨치기 위한 분투와 지혜가 요청된다. 사회의 따뜻한 시선을 걷어오는 잰 걸음이 필요하다. 온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역시 그 고민의 중심축은 기자들일 수밖에 없다.

기자로 칭하기는 쉽지만 기자로 불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이름이란 자신이 아닌 바깥에서 욕망을 덧붙여 부여한 사회적 산물이다. 사회가 부여한 욕망에 부응하지 못했을 땐 이름 대신에 별칭이 붙여지고 비판의 대상이 된다. 혹여 기자들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지 호시(虎視)하며, 제대로 불리우기 위해 우행(牛行)할 일이다.

기자의 날인 5월 20일은 5ㆍ18 광주민주화항쟁의 다다음날이다. 그 날 군부독재의 검열에 반대한 기자들보다 더 많은 수의 기자들은 군부가 전해준 대로 ‘폭도’와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항쟁을 낮추고 있었다. 그리고 길게 길게 기자생활을 영위했고, 아직도 자기 변명으로 살아가고 있다.

처음 맞는 기자의 날은 그 때 기자들이 보여주었던 두 개의 길을 또박또박 기억하며 사회와 새로운 대화를 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과거와 미래의 화합을 모색하는 기자들이 살아있음을 증거하는 날이었으면 한다.

원용진ㆍ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