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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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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기록

입력
2006.05.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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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범죄자들이 전후(戰後)에도 버젓이 기업과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수도 도쿄에 전범들을 위한 신사를 지어놓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아니다.

이 길고 힘든 작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자극이 되어준 것은 일본 정치가와 학자 등 각 분야 지도자들이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1937년 난징(南京)에서 일본군에 의한 대학살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는 점이었다.”

저자인 중국계 미국 언론인 아이리스 장은 2004년 미국 캘리포니아 남쪽 고속도로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36세였다. 1997년 ‘난징의 강간’(The Rape Of Nanking)이라는 제목의 이 책을 낸 이후 일본 우익으로부터 끊임없이 협박을 받았던 그의 죽음은 그러나 자살로 결론이 났다.

죽음의 이유야 어떻든 그의 ‘난징의 강간’은 ‘의도적으로 잊혀져’ 가던 역사를 다시 들춰내 논쟁의 불씨를 지펴낸, 목숨을 건 작업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만 60만 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화제를 모았고 ‘영어로 쓴 난징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연히 일본에서는 출판되지 않았다. 일본 우익의 시위와 협박이 이어졌고 아이리스 장은 남편과 아들의 존재도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주변을 조심해야 했다.

아이리스 장의 조부모는 사건 당시 난징을 탈출한 난민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당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언젠가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이리스 장은 난징 대학살을 ‘인간이 인간에 대해 저지른 만행 중 가장 끔찍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저항의 의지와 도구가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자행된 대학살은 일본군이 중국에 공포를 주기 위해 공식적으로 저지른 ‘발작’이라고 말했다.

책은 철저한 자료조사와 증언자들의 인터뷰, 자료사진 등을 통해 만들어졌다. 전쟁과 대학살이 일어나게 된 당시의 역사적 배경, 현장의 참상, 진실을 바깥으로 알린 사람들, 범죄자들에 대한 심판, 그리고 잊혀졌던 역사 등 저널리스트답게 간결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따라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항복하고 무장해제까지 당한 중국군을 군량 부족을 우려해 모두 처형하고, 민가에 난입해 3대에 이르는 부녀자를 강간ㆍ살해하고, 일본 신문에 실릴 정도로 장교들의 중국인 목베기 경쟁이 횡행하는 모습…. 일본군이 난징에서 벌인 만행의 세세한 묘사와 사진은 너무 끔찍해 눈길을 돌리고 싶을 정도지만 이처럼 천인공노할 사건이 용서(?)받고 잊혀져 가는 기막힌 역사의 과정과 그에 대한 분석은 눈 부릅뜨고 볼만 하다.

아이리스 장은 전쟁 중 저지른 온갖 악행에 대한 일본인들의 죄책감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로 희석됐으며, 그래서 가해 행위와 피해 상황을 두루 섞어 모두 전쟁의 한 과정으로만 애써 이해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죽은 자는 물론 수치를 당한 생존자는 침묵해야 했고, 학살자들은 은폐하거나 망각했다. 남겨야 할 역사적 기억은 냉전의 분위기와 양자의 필요에 의해 잊혀져 갔다고 풀이한다. 그리고 경고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고.

그의 노력으로 끔찍했던 역사는 묻혀 있던 곳을 비집고 나왔다.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난징 대학살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다. 중국은 12월12일을 난징 대학살 기념일로 제정했으며 70주년을 맞는 2007년에는 대대적인 행사를 열 계획이다. 할리우드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맡아 제작하고 있는 영화는 2007년 12월 70주년과 때를 맞춰 전 세계에 동시 개봉될 예정이다.

이 책은 1999년 국내(이클리오 출판사)에 번역ㆍ출판됐었다.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책에 눈돌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지 당시에는 별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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