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던 마을에 전쟁이 터진다. 엄마는 밀리를 숲 속으로 피신시킨다. 두려움과 공포에 떨던 어린 밀리는 하늘의 별이 떨어진 곳에서 오두막을 발견한다. 그 곳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사흘을 보내고 다시 엄마를 만나러 돌아오는데….
그림형제 중 동생인 빌헬름의 뒤늦게 발견된 동화다. 그래서인지 그림형제의 이야기치곤 낯설고 슬프다. 기독교적 상징과 은유를 벗겨내면 더욱 그렇다. 죽은 자의 세계에선 3일이 산 자의 세계에선 30년. 그래도 생의 마지막 순간,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은총을 얻게 되니 종교적으론 해피엔딩인가.
삶과 죽음이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 건 그림 덕이다. 중간 톤의 색채는 희로애락을 덮고, 담담한 필치는 감정의 과잉을 꺼린다. 게다가 성화(聖畵)의 알레고리를 연상시키는 풍경은 차분히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눈여겨보면 숲 속에 깃든 죽음의 공포가 섬뜩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굴어도 슬픔이 배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종교와 동화는, 고통스런 현실을 견디게 만드는 힘을 준다는 점에서 닮았다. 밀리의 엄마가 신을 믿지 않았다면 노파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고난을 겪던 주인공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다’라고 맺는 이야기가 없었다면 착하게 살 마음은 줄어들었을 테고. 하지만 믿음을 시험하는 일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구원 받기보단 전쟁이든 범죄든 나를 피해갔으면 하는 바람이 앞서지 않을까.
책을 덮으면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박선영기자 philo9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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