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기 싫은 TV드라마가 있어서 택시를 탔다. 평소 지하철로 지나가던, 낯선 지상의 길이다. 늦은 시간인데도 불을 밝힌 상점들이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쓸쓸한 거리. 대낮에도 그리 흥청거릴 듯싶진 않다. ‘광성 조명’ 간판에 불이 켜져 있었다. 신호대기에 걸려 내가 탄 택시가 잠시 멈춰 선 동안, 멍하니 간판을 바라보았다.
아주 먼 옛날, ‘광성기업사’가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직장. 그 곳이 뭘 하는 곳인지, 어디 있으며 어떻게 생겼는지, 몇 사람이 거기서 일을 하는지, 나는 몰랐다. 무슨 일을 하시는지 몰라도 아버지는 ‘광성기업사’에 다녔다. 거기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셨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자기 아버지의 직장이 수수께끼일까? 그것이 ‘광성기업사’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화공약품과 관련된 일을 했던 건 기억한다. 동네아주머니들이 집에 놀러왔다가 빙초산을 가져갔고, 여름이면 종종 아버지에게 무좀에 쓸 약을 달라고 했다. 어느 해는 포도당 가루가 지긋지긋했다. 미숫가루 탈 때도 그걸 넣었고, 떡도 설탕 대신 그걸 찍어 먹었다. 이상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그토록 오래 전이라는 것이.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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