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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아침을 열어주는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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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아침을 열어주는 달걀

입력
2006.05.1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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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누구나 소꿉놀이를 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붉은 벽돌 조각을 빻아서 고춧가루로, 민들레 꽃잎을 짓이기면 달걀 노른자, 깨진 기왓장이나 보도블록 조각, 평평한 차돌맹이는 온갖 식기로 이름 붙여 놀았던 장난. 동네 아이들이 한데 모이면 엄마와 아빠를 누가 할 것인가를 우선 정하고 놀이에 들어간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노는 와중에 자는 시늉과 깨어나는 시늉도 적당히 연기를 했어야 했다. 엄마 역할을 하는 아이가 “자, 이제 밤이다”라고 하면 일제히 쪼그려 앉아 눈을 감았고, “꼬끼오~”하고 닭 우는 소리를 내주면 모두들 아침이 온 듯 부산스럽게 눈을 떴다.

갑자기 옛 소꿉놀이 생각이 난 것은 얼마 전 농가 체험을 나갔다가 자고 오게 된 시골집에서의 아침 때문이다. TV도 할로겐 스탠드도 없는 방에서 깊은 잠을 자다가 ‘꼬끼오’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깬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알람시계가 아닌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나면서 그 옛날 소꿉놀이가 갑자기 생각 난 거다. 정말 예전에는, 닭 울음이나 달걀이 ‘아침’을 상징하지 않았나. 닭이 우는 소리에 잠을 깨서 눈비비고 뜰로 나가면 녀석이 방금 낳은 따끈한 달걀이 손에 잡히지 않았었나.

▲ '빅 나이트'의 오믈렛

닭이 우는 소리나 달걀은 영화나 연극 속에서도 종종 ‘아침’을 알리는 요소로 등장한다. 이탈리아인 이민자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미국 영화 ‘빅 나이트’를 보자. 뉴욕에서 가까운 뉴저지에 자리를 잡고 조촐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연 형제가 주인공이다. 고지식한 요리사 ‘프리모’가 형이고, 매니저 겸 홀 서빙을 맡고 있는 동생 ‘세곤도’는 절충 주의자다.

형의 아메리칸 드림은 ‘정통’ 이탈리안 요리를 미국에 전파하는 것으로, 손님들의 기호나 입맛에 상관없이 자기 방식만으로 승부를 보려 한다. 동생의 생각은 다르다.

바로 맞은편에 성업 중인 또 다른 이탈리안 레스토랑만 봐도, 정통이라 할 수 없는 간단한 파스타에 스테이크 따위를 구워 팔지만 밤마다 손님들이 꽉꽉 들어차니 부러울 따름. ‘정통’보다는 ‘절충’이라고 설득하는 동생과 ‘절충’은 곧 ‘엉터리’라고 고집을 부리는 형제의 갈등이 영화의 골을 이룬다.

형의 요리 솜씨를 탐내던 맞은 편 레스토랑 주인은 자신이 유명 가수를 초대해 주고 손님들을 끌어 주겠다고 형제를 속여 한바탕 파티를 계획하고, 가수가 나타나지 않고 허탕으로 파티가 끝나면 이미 압류 위기에 처한 형제의 레스토랑은 파산 할 것이라는 음모를 꾸미게 된다. 여기에 동생이 걸려들고, 결국 있는 솜씨를 다 부려 큰 잔치(빅 나이트)를 준비한 형은 그 허무함에 화가 나서 동생을 나무란다. 식당 뒤뜰에서 벌어지는 형제의 주먹다짐은 50년대 미국 이민자들이 어떤 고충을 겪었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어쨌든 무섭게 서로를 치받던 형제는 다음날 아침 주방에서 마주친다. 주방에 먼저 들어선 동생이 말없이 달걀 몇 개를 까 넣고 날렵하게 팬을 움직여 오믈렛을 만들고, 때마침 들어선 형이 머쓱해 하는 동안 형의 몫까지 오믈렛을 접시에 담는다.

나란히 앉아서 계란 요리를 먹던 형제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 여전히 오믈렛을 먹는다. 대사 한 줄 없는 이 장면은 영화의 엔딩으로, 이른 아침의 달걀 몇 개가 형제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 저 와중에도 달걀을 지져 먹으며 서로 다독이는 것을 보니 어떻든지 잘 되겠지 하는 희망적인 인상도 심어주고.

▲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프렌치 토스트

더스틴 호프먼과 메릴 스트립이라는 한 시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했던 화제의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빅 나이트’ 속의 1950~60년대 미국 사회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여성상이 등장한다. 50~60년대 미국인들의 여성상은 허리가 잘록한 스커트에 앞치마를 매고, 갓 구운 사과 파이를 오븐에서 꺼내어 체크무늬의 보가 깔린 식탁 위에 얹고는 가족을 불러 모으는 모습이었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 등장하는 1970년대의 미국 여성상은 그러나 의지가 세고 자아를 찾을 줄 아는 그런 모습이다. 여 주인공은 남편과의 이혼을 요구하고, 게다가 일시적으로 아들을 맡아 키우던 남편이 직장을 잃게 되자 아이의 양육권까지 차지하게 된다. 어린 아들과 아빠는 꼭 닮은 붕어빵 부자(夫子)로, 아들은 아빠의 자상함에 의지하며 살고 있던 중 이제부터는 엄마에게 가서 살아야 한다는 판결을 받게 된 것이다.

이윽고 엄마가 데리러 오는 D-day의 아침, 서로 한 마디만 꺼내도 통곡할 것만 같은 아들과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부엌에 모인다. 늘 만들던 대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부자의 모습. 달걀을 풀어 가스레인지 곁에 두고 아들을 그 옆에 앉힌다. 아들은 식빵을 한 장씩 달걀 물에 퐁당 담근다.

아빠는 달궈진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고 아들이 달걀에 적셔 둔 빵?팬으로 옮겨 지진다. 둘 다 한 마디도 없지만 이미 서로가 서로의 생활이 된 둘의 모습이 계란에 적셔 지져내는 빵 한 장처럼 자연스럽다.

밤 새 뒤척일 만한 고민이 있었더라도 아침에는 달걀 한 알 먹고 시작하자. 불과 20년 전만 해도 소풍 가방의 삶은 계란은 우쭐한 메뉴가 아니었던가. 주변에 지천으로 흔해졌어도 달걀은 여전히 영양 덩어리다. 축 쳐졌던 어깨를 오믈렛과 계란빵으로 달래고 형제는 다시 고향에서, 부자는 다시 엄마와 함께 새출발을 했기를 나만의 ‘속편’으로 바란다. 아침에 먹는 달걀은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삼색 오믈렛>

버섯, 다진 마늘, 아스파라거스, 방울토마토, 달걀 3~4개, 우유 1큰 술, 소금, 후추

1. 팬을 달구고 다진 마늘, 버섯, 아스파라거스는 살짝 볶아 둔다.

2.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달군 팬에 우유, 소금을 넣고 풀어준 달걀을 붓는다.

3. 2가 반쯤 익으면 1을 올리고 반으로 접고 마저 익힌 다음 후추를 뿌린다.

<프렌치 토스트>

식빵 3조각, 달걀2개, 우유(생크림 가능) 약간, 소금, 설탕, 과일, 시럽, 버터

1. 식빵은 두껍게 썰고 달걀은 소금을 넣고 풀어서 우유와 섞는다.

2. 우유에 연유나 설탕을 넣어 간을 맞춘다.

3. 기름이나 버터를 팬에 넣고 달군 다음 2에 적신 식빵을 앞, 뒤로 지진다.

EBS 요리쿡 사이쿡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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