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소리’ ‘타오르는 강’의 작가 문순태씨의 세는 나이가 올해로 68세다.(호적 나이 65세) 하지만 그는 지금도 93세 되신 어머니가 지은 밥을 먹고, 빨래한 옷을 입는다고 했다. “아내는 외지 사는 자식, 손자 보고싶어 나들이가 잦아서요.”
그는 새 소설집 ‘울타리’(이룸 발행)에 그 어머니의 지나온 삶의 자취와 성취, 또 어머니가 바라보고 어머니를 바라보는 가족과 세상의 다양한 시선들을 다감한 서정의 문체로, 질박한 추억의 언어로 아로새기고 있다.
체험적 진실에 뿌리를 둔 듯한 그의 이야기 속 어머니들은, 이제는 점차 낯설어지고 급격히 왜소해져가는 ‘희생과 인고’의 어머니들이다. 식솔은 팽개쳐두고 바깥으로만 나돈 이기적인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냉대와 멸시와 심지어 폭력까지 말 없이 받아내며 자식들을 위해 희생했던, 그 동물적이고도 맹목적인 모성. 그는 “그 사랑이 농경사회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말했다. 가령, 작가가 책 머리말에 썼고, 이상문학상 특별상 수상작인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에 녹여넣은 어머니의 마음자리는 결코 그 어떤 세태의 논리로도 때 묻힐 수 없는 우람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농사 그만두고도 어머니의 농사 걱정은 끊이지 않는다. 웬 쓸 데 없는 걱정이시냐는 아들의 투정에 어머니 말씀. “농사가 잘 되어야 세상이 편헌 것이여. 농사가 워디, 네 것 내 것이 따로 있다냐. 농사꾼 자식이 그것도 몰러?”
70년대 초의 일이라고 한다. 일가가 죄다 모이는 제삿날, 어머니는 마루에 놓인 냉장고에 이불보를 씌우라고 하신다. “친척들 중에는 셋방살이 하는 사람도 있는듸, 보란 드끼 냉장고 자랑하겄다고 마루에 떠억하니 세워두어야 씨겄냐.” 그는 그 어머니의 삶이 결코 실패한 삶이 아니라고, 오히려 가장 아름답게 성취한 삶이라고 말했다.
책 속에는 또 한 편의 아름다운 체험의 풍경이 담겨 있다. 한 아파트에 살던 노모와 비슷한 또래의 할머니 이야기다(‘은행나무 아래서’). 남편 자식 팽개치고 유학까지 다녀와 영문학 교수를 지낸 할머니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나의’ 어머니의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우정. 전혀 이질적인 두 노년의 어울림은 아마도 자신의 삶이 챙기지 못한 결핍의 여백이 있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답지 않았을까.
세상 모든 딸들과 누이들이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를 신념처럼 간직하고 사는 이 산업ㆍ정보화 시대에 그의 ‘농경적 모성’ 찬가는 시대의 불협화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니 그래서 더 사무친다. 이 역시 어쩌면, 이질적인 두 가치의 어울림의 아름다움이다.
작가는 이번 학기만 마치면 교단(광주대) 정년이다. 그는 이제 오로지 소설에 전념할 생각이라고, 무등산 자락에 자그마한 집필실도 마련해뒀다고 했다. 그 첫 숙제가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전7권, 1987년)의 마무리라고 했다. “그 당시 출판 일정 등에 쫓겨 깔끔하게 매듭짓지 못했어요.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 5년쯤 느긋이 앉아 나머지 세 권을 이어 쓸 생각입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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