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있는 것처럼 국제철학연맹(FISP)이란 것도 있다. 국제축구연맹은 4년마다 축제를 열고, 이제 코앞에 닥친 독일월드컵에 대한 기대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국제철학연맹은 1900년 파리에서 결성된 이래 대략 5년마다 모임을 주관해왔다. 이 모임은 미미한 규모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세계 각국에서 3,000여명의 철학자들이 모이는 대규모 축제로 발전하여 ‘철학자들의 올림픽’이라 불리게 되었다.
● 전세계 철학자 3,000여명 운집
2008년 여름에는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서는 국제철학연맹과 한국철학회가 공동주관하는 제22차 세계철학자대회가 일주일 동안 열린다. 지구촌의 철학자들이 우리나라에 모여 현재 인류가 직면한 절실한 문제들을 성찰하고 철학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댈 예정이다.
특히 이번의 서울 대회는 서구 지역에서 벗어나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최초의 대회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먼저 이 대회를 주관한다는 것도 주목할 일이다. 2003년 한국철학회는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그리스의 아테네와 힘겨운 경합을 벌인 끝에 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그리스는 서양 사상과 문화의 발원지다.
서양인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그리스와 이어지지 않는 사상을 학문적인 이론으로 쳐주지 않는 편견이 가시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점 저런 점을 따졌을 때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던 도전이었고, 그런 만큼 더욱 값진 성과이다. 이런 성공의 배경에는 이제 동아시아 전통의 사유가 세계 사상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때라는 세계인의 자각과 기대도 한몫 했을 것이다.
내일 27일 토요일에는 국제철학연맹의 임원들이 대구에 모여 한국조직위원회와 함께 내후년의 대회를 위한 준비모임을 가진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체육인들만의 축제가 아니듯 세계철학자대회도 철학자들만의 축제가 아니길 바란다. 철학적 대화와 토론에 붉은악마와 같은 응원단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관심과 지원 없이는 이 대회가 우리에게 선물할 어떤 도약의 기회가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4년 한일월드컵은 세계인의 마음 속에 근대화된 한국의 이미지를 심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2008년 서울 세계철학자대회도 한국인의 문화적 전통과 역량을 외국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 기회를 살려서 동서고금의 사상이 활발하게 교차하는 요충지로서 우리나라가 지구촌에서 차지하는 문화적 위상을 세계 지식인들에게 천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한국 정신문화 널리 알릴 기회
요즘 선진화를 둘러싼 논의가 오고 가고 있지만, 수입된 외래사상을 소비하고 마는 처지에서 선진국이라 불릴 수 없는 노릇이다. 축구만 잘한다고 선진국이 아니듯,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해서 곧 선진국인 것은 아니다. 더욱이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조건에서는 세계인의 양심을 대변하고 인류 보편의 이념을 구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선진국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잘 만드는 국가로 그치지 않고 역사적 현실의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개념을 체계적으로 생산하는 주요 거점이 될 때라야 덩치 큰 나라들도 존경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문화를 통해서만 주변 강대국과 대등한 관계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숙명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미지의 정신적 대륙을 개척하여 새로운 삶의 모델을 일구어내는 나라로 바뀌어 있을 내일은 언제일까. 한류 대중문화가 아니라 한류 정신문화, 배우 배용준이 아니라 철학자 배용준이 이웃 국가에서 환영받을 날은 언제일까. 2008년 서울 세계철학자대회는 그런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이정표이다.
김상환ㆍ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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