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eekzine Free/ 커버스토리 - 인드라, 트로트 부르고… 플루트 불며… "나무아미타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eekzine Free/ 커버스토리 - 인드라, 트로트 부르고… 플루트 불며… "나무아미타불"

입력
2006.05.19 03:05
0 0

독특하고 파격적인 무대가 서울도심에서 펼쳐졌다. 청계천에서 승복 차림에 목탁을 든 비구니 스님이 신명나게 대중가요를 노래한다. 경복궁에서는 서양악기인 플루트를 꺼내 대단한 연주실력을 뽐낸다. 행인들의 발걸음이 멈춰지고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집중된다. 길거리 괴짜 스님가수인가?

아니다. 주류 대중가요계에 도전장을 내밀 신인 비구니 대중가수의 데뷔앨범 재킷 촬영 현장이다. 가수의 이름은 ‘인드라’. 화엄경에 나오는 화엄사상 전반을 나타내는 인드라망의 구현, 곧 깨달음을 뜻하는 범어라고 한다. 스스로 인드라가 돼서 가는 곳마다 노래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하는 대중가수가 되고자 직접 지은 예명이다.

지난 15일 강남구 서울교대 인근의 한 녹음실. 신토불이 가수 배일호의 녹음이 끝나자 불혹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비구니 가수 인드라씨가 독특한 승복 차림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경쾌한 율동을 곁들인 댄스풍의 노래에서 트로트 분위기의 성인 발라드까지 맛깔나게 3곡을 소화해낸다.

대단한 가창력도 놀랍지만 가사와 멜로디가 범상치 않다. 귀에 콕콕 박힌다. 녹음실 창문 밖에 낯익은 얼굴이 열심히 사인을 보내고 있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김국환의 ‘타타타’, 양희은의 ‘하얀 목련’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등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한 김희갑씨다.

부인이자 작사가인 양인자씨도 보인다. 비구니 가수 인드라의 데뷔앨범은 가요계의 히트곡 보증수표 콤비인 이들 부부의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비구니 가수 인드라씨는 이전의 스님 가수들과는 차별적이다. 대중을 상대로 활동을 하려는 주류 대중가수로의 도전이기 때문이다.

비구니 가수 인드라의 법명은 서연(西蓮), 속명은 정수경이다. 그는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후 오케스트라의 수석연주단원을 거친 촉망 받는 플루트 연주자였다. 학창시절 내성적인 구석이 있어 친구보단 음악을 더 좋아했다. 여고시절 ‘월간음악’주최 콩쿠르와 ‘영남대 주최 전국 남녀 고교생 음악경연대회’에 입상을 하며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결국 85년 영남대 음대 관현악학과에 들어가 정식으로 플루트를 전공했다.

세계적인 플루리스트가 되려는 원대한 꿈을 품은 시절이었다. 불교에 심취한 것은 대학졸업반 무렵 둘째 언니의 권유로 해인사에 따라 가면서부터이다. “절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남이 아닌 나로부터 시작되고 내가 있음으로써 모든 기쁨과 슬픔이 존재하고 인간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세속적인 음악활동이 무의미해졌지요.”

졸업 후 마산시향에 수석단원으로 들어갔다. 2번이 독주회까지 열만큼 연주가로도 잘 나가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인생의 분기점이 될 시기가 다가왔다.

정직하고 열심인 사람보다 비슷한 실력이면 가방 큰 사람이 앞질러 가는 세상을 처음 알았다. 그런 세속적인 분위기에 휩쓸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상선 기능항진증이란 병까지 찾아왔다. 쉬면서 삶과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결국 그는 현실과 이상의 불합리로 겪은 고통을 버리고 구도의 길을 결정했다.

1993년 비구니 선방이 있는 경주 흥륜사에 들어갔다. 구도를 위해 완전히 음악을 놓았다. 계룡산 동학사와 승가대학을 거치면서 수행에만 정진했다. 헌데 다른 스님들처럼 선방에서 큰 도를 깨치는 것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1년 무렵 대구의 지인들이 플루트 연주를 부탁해 경주엑스포 만찬장 무대에 섰다.

하지만 “속세의 업에 의해 배운 음악을 스님이 되어 연장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때려치우고 선방에서 도나 닦아라”, “잘하는 플루트만 하지 노래는 왜 하냐”는 주변의 거부감도 있었다. 가끔 사찰 행사에서 MC도 보고 찬불가도 부르고 때로는 레크레이션을 도맡자 “저런 사람이 왜 스님이 됐어” 하는 질시의 시선도 없지 않았다.

'중생이 기쁘면 부처도 기쁘다'는 생각으로 대구 청도의 비슬 문화촌에서 한 달마다 열리는 음악애호가들의 '비슬락' 공연에 참여했다. 스님으로서 불자들이 아닌 일반 대중과 어울리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따뜻한 사람들과의 라이브무대라는 생동감이 좋았다.

2004년 서현스님의 대구불교방송에서 방송진행 제의가 들어왔다. 7개월 동안 '음악이 있는 명상'이란 저녁 9시 프로와 오후 3시 '토요일 오후 서연입니다' 프로를 맡아 진행자로 거듭났다. "서양음악을 전공했지만 국악적 요소가 짙은 신세대적인 비구니 스님의 음성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것도 불교에 대한 호감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제가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는 모습에 젊은 불자들이 어렵게 생각했던 불교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아무리 거룩한 법문도 중생들 귀에는 안 들어 올 때가 있기에 음악은 모든 사람을 화합시키는 말이 필요 없는 포교이자 법문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욱 더 대중에게 스며드는 노랫말로 부처님 말씀을 전하겠다고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후 크고 작은 산사음악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05년 10월 17일 경북 영천 만불사 산사음악회. 경건하던 공연이 서현스님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베사메무쵸', '잊혀진 계절'등 친숙한 레퍼토리를 플루트로 연주하면서 관객들에게 촛불을 흔들게 하는 파격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이날 만불사 공연은 인터넷 조회수가 1,000회에 가까울 만큼 화제였다.

"주체할 수 없는 끼가 다시 살아나는 기분 아세요. 음악이야 말로 제 큰 스승이고 앞으로 해야 할 과제인 것 같아 열심히 정진했어요." 진정한 포교를 위해 자신의 노래를 담은 독집음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곡을 받았을 땐 승복을 벗어난 톡톡 튀는 아티스트 스타일을 염두에 두었어요." 메이저 가수가 되려면 특정종교에 대한 선입견이 있을 것 같아서다. 헌데 마음의 자유를 얻고 싶어 스님이 된 사람이 '방송출연에 장애가 된다고 음악이 아닌 외향적인 것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 번뇌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찬불가가 아닌 은유적인 불교사상을 담은 노래처럼 승복이지만 승복 같지 않은 연출로 스타일을 만들어가려고 마음먹었다. "저의 등장은 화제성으로 한 번에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앞으로 지속적인 음반활동을 통해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계속 선보이는 가수가 될 겁니다."

신인 비구니 가수 인드라의 강점은 국악과 서양음악의 접목과 더불어 악기연주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점이다.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음악보다는 더욱 세속적이고 험난할 것이 자명한 대중음악계의 현실이다. 실제로 공식 첫 무대였던 지난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김희갑 음악생활 40년 헌정음악회 이후 갈채를 얻어내자 '김희갑 양인자씨의 노래를 받아 하루아침에 떴다'는 주변의 쑥덕거림도 있었다.

"인기나 돈 같은 세속적인 것에는 아무 욕심도 없습니다. 궁극적 목표는 한국적 소리와 서양 소리와의 하모니를 통해 새롭고 젊은 불교를 알리는 것입니다. 대중이 친근감을 느낄 편안한 노래를 통해 부처님의 법을 펴는 것을 화두로, 누가 뭐라 해도 이젠 내 길을 묵묵하게 갈 것입니다."

티벳이나 히말라야, 인도의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도 꿈꾸는 인드라씨의 눈망울엔 동자승 같은 선한 동심이 배어있었다.

글ㆍ사진 최규성 편집위원

■ '인드라의 첫 앨범' 작곡 김희갑·작사 양인자

뮤지컬 작업에 몰두해온 작곡가 김희갑씨(70)와 소설가이자 작사가인 양인자씨(61) 부부가 대중가요작업을 재개한 것은 최근이다. 무려 13년만이다. 지난 해 12월에 발표한 주현미와 팝페라 가수 캐빈 육의 음반에 이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품이 비구니 스님가수 인드라의 데뷔 앨범이다.

부부는 8곡의 신곡을 만들었다. 김희갑씨는 “인드라는 대중이 좋아할 요소가 많은 가수다. 음대 출신이라 기본기가 탄탄하고 특히 트로트 창법이 매력적이다. 트로트에 대한 재능은 대중성을 의미한다. 스님이어서인지 호흡이 길고 체력도 좋다. 특히 고음으로 올라가면서 목소리가 더욱 매력적이고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에는 우수가 짝 깔려 근사하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양인자씨도 “이렇게 발랄하고 끼가 넘치는 비구니 스님을 보신 적 있으세요?”라며 활짝 웃었다.

인드라가 출가할 무렵 감명 깊게 들었던 노래는 김씨 부부가 작사ㆍ작곡한 김국환의 ‘타타타’였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 생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게 덤이잖소.’ 얼마나 불교적인가. 김씨 부부의 곡이라면 노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졌다.

16년이 지나 신기하게도 꿈은 이루어졌다. 서현스님은 지난 해 말 친분이 있는 방송 관계자가 있는 자리에서 우연히 노래를 부르게 됐다. 노래를 들은 그는 “그냥 부르는 노래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리”라며 “음반이 있으면 하나 달라”고 했다. 지나가는 소리로 “김희갑 양인자 선생님의 곡과 가사를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의 주선으로 몇 일 후 만남이 이루어졌다. “아 이제 때가 되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해 12월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세 사람이 처음 만났다. 한 두 곡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 만불사 산사음악회 DVD와 ‘??스틱 짙게 바르고’ , 민요조의 ‘천년바위’, 왁스의 ‘여정’등 다양한 장르의 데모CD를 준비했다.

서현스님은 “리듬과 곡조가 완전히 새로운 불교대중가요를 부르고 싶다. 라틴 계열의 댄스리듬이어도 좋다.”고 했다. 양인자씨는 “종교의 궁극은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구분하진 않지만 심정적 불교도인지라 스님가수의 요청엔 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음악적으로 깨어있는 스님가수란 생각에 두 콤비는 즉석에서 새 앨범 제작에 합의했다. 인드라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작은 것들의 소중함, 인연의 법 그리고 어둡고 아픈 곳에서 고통 받는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은유적으로 불교사상이 배어있는 스케일 큰 멜로디와 노랫말을 요청했다. 분명 일반 대중가요인데 사실은 불교적인 ‘타타타’같은 가요를 염두에 두었던 것.

맨 처음 받은 곡은 ‘샨티 샨티 샨티’. 따라 부르기 재미난 곡이다. ‘샨티’는 추도의 의미를 가진 불교용어로 의롭게 목숨을 바친 영혼의 아픔을 달래는 노래다. 굿거리장단도 들어간 국악적인 창법이 아주 친숙하게 다가온다. ‘무명’은 스치는 모든 인연이 전생에는 사랑을 약속한 사이일지 모르기에 모두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전형적인 성인 발라드풍의 노래. 김희갑 특유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인상적이고 스케일 큰 반주도 일품이다. 아주 경쾌한 ‘내가 먼저’는 캠패인 송 같은 느낌. ‘인생’이란 노래는 디스코 뽕짝 같은 노래이다.

양인자씨는 ‘무명’과 ‘우리가 무얼 잘못 했나요’를 연습하는 도중 말없이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김희갑씨는 “나이가 들어 이젠 초보자를 가르쳐가며 일하기엔 힘이 부친다. 근데 모처럼 실력이 탄탄한 스님가수를 만나 일을 크게 벌이게 됐다. 1년 넘게 걸릴 앨범인데 6개월 만에 완성이 되어가고 있다.”며 크게 기대했다. 비구니 가수 인드라의 데뷔음반은 6월 초에 나올 예정이다.

글ㆍ사진 최규성 편집위원 ks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