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 물러(21)는 어머니가 한국인인 한국계 스위스 청년이다. 2004년 16살 된 동생 마티아스와 스위스에 의류업체 ‘마이무이’를 만들었다. 큰 기대 없이 그저 옷이 좋아 시작한 사업은 2년 만에 ‘10대가 열광하는 브랜드’로 대박을 터트렸다. 자신감이 생긴 그는 얼마전 ‘마이무이’를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까지 들고 왔다.
“언젠가부터 한국에 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는 4남매 가운데 유독 한국적이거든요. 쌈밥과 된장, 불고기 등 한국 음식을 매일 먹고, 소주 마시는 분위기를 엄청 좋아해요. 하하. 사업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한국에 올 기회가 생겼죠.”
칼리는 이제부터 한국에 살 작정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칼리는 4살 때 가족과 함께 스위스로 돌아가 그곳에서 자랐다. 그래도 2~3년에 한번씩 온 가족이 한국 나들이를 해온 덕에 한국이 무척 친숙하다. 어릴 때 울면서 배운 한국어 실력도 제법이다. 대학 때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와 15년간 산 그의 아버지 칼 뮬러씨(55)의 역할이 컸다.
그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는 무조건 한국말만 쓰도록 가르쳤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스위스어를 배웠을 정도다. 집에서 스위스어를 썼다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뿐인가. 아버지는 어른들과 술을 마실 때 고개를 돌려야 하고 어른이 식사를 마치기전에 먼저 일어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어머니의 나라 ‘한국문화’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올해 한국에 들어와서 깜짝 놀랐어요. 5년 전과 비교해 사회 전반적으로 혼혈아에 대한 시각이 긍정적으로 바뀐 것을 피부로 느꼈어요. 그전에는 심할 때는 손가락질도 하고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우리도 이제 설 자리가 있다는 현실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칼리는 ‘마이무이 대표’란 직함을 달고 있지만 매일 꼬박꼬박 출근해 매장을 지킨다. “사무실에서 매장 직원들의 보고를 받는 대표가 아니라 직접 뛰는 대표가 되고 싶었어요. 고객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느끼는 것 만큼 짜릿한 일도 없으니까요.”
칼리는 중학교 때 ‘옷 만들기’에 푹 빠졌다. 청바지에 티셔츠나 안 쓰는 가방을 마음대로 잘라 붙여 근사한 바지를 만들어내곤 했다. 입고 나가면 친구들이 ‘어디서 샀냐’고 묻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 갖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밤새 옷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친구들로부터 인정 받으면서 작은 꿈을 키웠다. 그때부터 틈틈이 느낌 가는 대로 옷을 디자인했다.
칼리는 대학에 들어가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1년 만에 휴학계를 냈다.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과 실무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사업가인 아버지는 그가 학업을 중단하겠다고 했을 때 고맙게도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가 돼 줬다.
“아버지가 사업가라 생활이 어렵진 않았지만 중학교까지 중퇴하면서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동생과 밑바닥부터 시작해 일궈냈어요. 열정이 있다면 나이는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10대 이기 때문에 10대의 취향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었고요.”
20대가 된 그는 한국마켓의 타깃을 20대로 정했다. 그렇지만 ‘마음이 젊은 사람이면 누구나 입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스위스와 패션 스타일이 워낙 틀려 이번에 들고 온 옷들은 팔 수 없게 됐다. 압구정동 한복판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 입은 옷을 구경하는 게 요즘 그가 하는 또 다른 일이다. 한국인 취향에 맞춰 재디자인해 곧 새로운 옷을 매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에서 성공하면 아시아, 미국, 유럽에까지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지금은 의류만 하고 있지만 신발이나 핸드백까지 디자인 하는 토털 브랜드로 만들고 싶습니다.”
21살의 청년 칼리는 꿈이 있어 행복하다. 6월부터는 연세 어학당에서 한국말도 본격적으로 배울 계획이다.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한발 한발 내딛는 그의 표정에서 20대초반에 걸맞지 않는 커다란 힘이 느껴졌다.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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