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학생이다!”
17일 오후 충남 천안시 목천읍 목천고 교정.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달려간다. 화단 이곳 저곳을 돌며 휴지를 줍고 있던 이 학교 교복 차림의 노학생은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며 카메라를 들어보이는 학생들을 향해 흔쾌히 모델이 돼 준다.
복학생이나 만학도보다도 한참이나 선배로 보이는 주인공은 이 학교 김광희(55) 교장이다. 하루에 몇 번씩 할 때도 있는 모델 노릇은 이제 익숙하다. 교내 최고의 사진모델이란 말이 허언이 아니다.
김 교장은 지난해 3월 부임 이후 줄곧 학생들과 같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나오고 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학교 생활을 바라보고 학생들과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줄이고 싶어서였다.
“부임해 보니 이곳 역시 여느 학교처럼 교사나 교장과 학생들 사이에 거리감이 있었지요. 교복만 걸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점차 학생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붙여준 애칭은 ‘노(老)학생’. 한 졸업생이 남겨놓은 교복을 입은 김 교장의 뒷모습은 흰 머리카락을 새치로 오해해 주기만 한다면 영락없는 학생이다.
학생들에게 가까이 가기 위한 김 교장의 노력은 매주 수요일 아침 교문 앞에서도 벌어진다. 이날 그는 오전 7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등교하는 학생 1,000여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이 자리엔 50세를 넘긴 고참 교사들도 함께 한다.
‘가식적인 이벤트’라는 시각이 없지는 않았다. 처음에 일부 학생들은 “새로 온 교장이 쇼를 한다”고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설령 이벤트라 할지라도 1년 이상 계속되면 마음이 전달되는 법이다.
3학년 이정근군은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청하는 악수가 어색했는데 지금은 우리가 먼저 인사말을 건넨다”며 “담임이 아닌데도 이름을 부르며 관심을 표해주는 것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또 인사를 잘하는 학생에게는 ‘예절상’, 복장이 단정하면 ‘준법상’, 친구들과 융화를 잘하는 학생에게는 ‘우정상’을 주는 등 학생들의 장점을 살린 다양한 시상으로 학생들의 자신감을 살려주고 있다.
김 교장은 “학생과 교사가 친밀해지면서 학생들이 자주 웃는 등 학교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그래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학생들 성적도 쑥쑥 오르고 있다”고 웃었다.
천안=글ㆍ사진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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