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엔 예술의 피가 흐른다.’
자신의 이름이 내걸린 음반을 발매한 클래식 애호가(잉글랜드의 에릭손 감독), 그리고 연극 배우에 점성술사(프랑스의 도메네크 감독). 축구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독특한 경력을 가진 사령탑들이 2006 독일월드컵을 누빈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선수들을 지휘하고, 냉혹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고독한 승부사’들의 뒷면에 숨어있는 뜻밖의 이색 경력들. 체스 선수로 활약했던 체코의 브뤼크너 감독은 비상한 두뇌회전을 뽐낸다.
▲클래식은 내 친구-잉글랜드 에릭손 감독
독일월드컵을 끝으로 잉글랜드 대표팀의 지휘봉을 내놓을 예정인 스벤 예란 에릭손(58) 감독은 소문난 클래식 애호가.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박힌 음반을 내놓은 바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클래식의 명곡들을 3장의 CD에 모아 ‘에릭손의 클래식 컬렉션’이란 타이틀로 발매했다.
이 음반에는 엘가, 월튼, 퍼셀 등 영국 작곡가들의 작품과 에릭손 감독이 성장한 스칸디나비아 지역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실렸다. 에릭손 감독은 직접 음반 해설지를 썼을 정도로 범상치 않은 ‘내공’을 과시한 바 있다.
▲‘아트 사커’의 지휘자는 예술인?-프랑스 도메네크 감독
‘아트 사커’를 표방하는 선수들과 연극 배우 감독. 뭔가 예술적인 냄새가 풍기는 조합이다. 언뜻 봐서는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올림피크 리옹과 프랑스 대표팀의 수비수로 활약했던 레이몽 도메네크(54) 감독은 한 때 축구계를 등지고, 연극과 점성술에 심취했던 이색 경력의 소유자. 하지만 ‘호화 군단’ 프랑스 대표팀에서 골칫거리로 지목 받고 있다.
우선 선수들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지적. 개인적인 취미에 몰두한 나머지 본연의 업무에는 충실하지 못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11월엔 대표팀의 골키퍼 선정에 대한 질문을 받자 “별에게 물어봤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했다”는 어이없는 대답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교사 출신에 체스 선수-체코의 브뤼크너 감독
백발이 성성한 모습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녀 미국 소설 속에 나오는 인디언 추장 ‘클레키 페트라’라는 별명을 지닌 카렐 브뤼크너(67) 감독은 두뇌회전이 빠른 사령탑으로 알려져 있다.
전직 교사 출신으로 유소년팀을 이끌며 각광을 받은 브뤼크너 감독은 뛰어난 판단력을 앞세운 ‘전술의 대가’로 평가 받는다. 체코 대표팀의 스트라이커인 얀 콜레르는 “브뤼크너 감독은 상대에 따라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데 지금까지 항상 적중하고 있다”며 굳은 신뢰를 나타내고 있다.
마치 체스의 말을 옮기는 듯한 세밀한 선수 기용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전반 0-2로 끌려가던 유로 2004 네덜란드전에서 블라디미르 스미체르를 수비수 자리에 투입해 경기의 흐름을 바꾼 뒤 4-3으로 역전승을 거둔 것은 브뤼크너 감독이 지휘한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고 있다.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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